[기능인 성공시대] 귀금속 가공 명장 박정열 진영사 대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4면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은 24일 ‘이달(11월)의 기능한국인’으로 대구시 태평로 귀금속거리의 보석전문점 진영사를 운영하는 박정열(52·사진) 대표를 선정했다.

그는 경북 청도군 가난한 농가의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 대구로 와 대신동 작은 보석상에 들어가 2년간 허드렛일을 한 것이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악착같이 실력을 쌓고 좀더 큰 보석상으로 옮겨 일했다. 저축한 돈으로 마침내 대구 교동에 보석공장을 차렸다. 1992년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나가 은메달을 땄다. “그때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이 결국 인생의 보약이 됐지요. 분해서 2~3년 동안 비엔날레 같은 국내 대회에 30번 이상 나가고, 해외 디자인 경진대회에도 여러차례 출품했어요. 은메달이 악바리 근성을 건드린 것이지요.(웃음)” 지난해 대한민국 귀금속 가공 명장 칭호를 얻은 것도 7전8기 끝에 쟁취한 것이다.

한국은 15년간 국제 기능경기대회 귀금속 부문에서 1위를 거의 독차지했지만 관련 제품은 수출산업으로 크지 못했다. 신라 왕관까지 치면 우리나라 귀금속 세공의 역사는 1000년 이상이지만 산업적으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귀금속 가공 기능사들은 세계의 VVIP(귀빈 중에서도 귀빈) 고객을 상대합니다. 중동 산유국의 왕족이나 부호들의 호화판 저택을 보면 욕실이나 응접실 벽을 금으로 디자인해요. 한국인 특유의 뛰어난 귀금속 세공 손재주를 갖고 이 엄청난 시장을 뚫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유럽의 디자이너들은 몇 년씩 세계 각국을 돌며 시장을 개척하고 창의력을 충전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은 모방과 단순노동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그는 지적한다. 기능인을 단순인력으로 폄하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 유명 디자인을 빠르게 카피해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술만 세계적이 됐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얼마 전 진영사에는 잘 차려입은 50대 여성이 결혼 30주년 기념반지를 만들고 싶다고 찾아왔다. 반지에 뜻깊은 스토리를 담아 주고 싶어 ‘취재 인터뷰’까지 했다. 이 중년 부부가 처음 만난 곳이 바다라는 점을 감안해 반지 디자인에 조개의 형상을 넣었다. 완제품을 받아본 손님이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박 대표는 이처럼 개인별 컨셉트를 담은 제품을 특화사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가난해 많이 배우지 못한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50줄에 접어든 지난해 대학생이 됐다. 실무경험이 풍부해 일부 대학 보석 관련학과에서 특강 주문이 잇따르는데도 말이다. 그는 “첨단 컴퓨터디자인(CAD)과 고급디자인, 거기에 마케팅 기법까지 익히니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홍승일 기자

◆이달의 기능 한국인=국내 우수 기능인의 창업 등 성공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기 위해 2006년 8월 정부가 제정한 월례 포상 제도. 한국산업인력공단의 6개 지역 본부와 18개 지사, 노동부 지방관서에 서류를 갖춰 응모하면 된다. 웹사이트(www.hrdkorea.or.kr) 참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