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쓴소리' 귀막는 노동부 간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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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부가 지난해 시행한 실업대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기사가 중앙일보 9일자 가판과 전자신문을 통해 보도된 직후인 8일 밤.

노동부의 한 간부가 취재기자에게 "이런 기사를 보고 살아야 하느냐, 목을 따고 죽어야 한다" 는 전화를 걸어 왔다. 이 간부는 "기사 내용도 틀리고 '돈만 썼다' 는 제목은 말도 안된다" 고 말했다.

실업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 기사는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이 노동부로부터 2억원에 용역을 의뢰받아 작성한 '실업실태 및 실업대책 효과분석' 연구보고서를 단독입수해 요약한 것.

보도된 사실에 문제가 있다는 노동부 간부의 지적이 사실이라면 정부부처가 용역을 줘 실업대책을 점검한 연구결과가 엉터리라는 말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연구결과가 당초 기대(□)를 무너뜨리자 이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예산 2억원은 쓸데없이 낭비한 셈이 된다.

"연구보고서를 인용 보도했을 뿐인데 기사내용 중 어느 부분이 문제가 되윰? 고 취재기자가 되묻자 전화를 걸어온 노동부 간부는 "제목만 부드럽게 고쳐달라" 고 말을 고쳤다.

송지태(宋智泰)능력개발심의관은 "지난 2년동안 밤을 새가며 실업자 줄이기에 매진한 노동부 공무원들의 억울함도 이해해 달라" 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노동부는 또 국정홍보처로부터 사실관계 확인요청을 받자 각 언론사에 '해명자료' 를 보내면서 연구보고서의 내용은 알리지도 않은 채 "IMF 실업 대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내용(보도된 기사를 뜻함)" 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연구원이 우리가 준 용역을 유출했다" 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노동연구원에 용역을 못준다" 고 했다.

파문이 일자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소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용역을 안주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지 않느냐" 며 기사 축소 또는 삭제를 요청해 왔다.

그러나 보도를 접한 한국노총 최대열(崔大烈)홍보국장은 "천문학적 예산을 퍼붓고도 실업대책이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정부가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내쳐서야 되느냐" 며 "전시행정식의 실업대책을 바로잡아 실질적인 실업대책을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고 말했다.

사회부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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