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일 교수, "日 우경화 뒤엔 '위기의식'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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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그러나 이런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일본의 우경화를 소리높여 비난하지만 얼마 안가 잊어버리곤 한다.

'일본우익연구' (중심.1만2천원)는 일본에 대한 일회적이고 피상적인 감정 대신 냉철한 사회과학적 분석의 틀을 들이댄 연구서다.

일본전문가들인 한상일(58.국민대).김호섭(47.중앙대).이원덕(38.국민대)교수와 이면우(40.세종연구소)연구위원이 각각 다른 각도에서 글을 썼다.

이원덕교수는 "최근 일본을 특징짓는 가장 큰 흐름은 우경화인데 지금까지 이에 대한 국내 연구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본격적인 분석보다는 단편적인 반일 감정이 주류를 이뤘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최근 변화를 정확히 읽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객관적이고 학문의 차원에서 일본 우익을 분석하려는 것" 이라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저자들은 일본의 우경화가 90년대 이후 본격화되고 있으며, 우익의 속성 중에는 한반도에 대한 위협의 요소가 적지않다는 데 주목한다.

90년대는 일본에게 여러모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이 새로운 강국으로 급성장하고 있고, 북한은 일본열도 위로 미사일을 쏘았다. 새로운 위기속에서 일본은 묶여져있던 군사력을 되찾을 기회를 맞은 것이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내부적으로 진보세력의 소멸을 초래했다. 우경화의 브레이크가 사라진 것이다. 일본 경제의 침체와 정계의 이합집산도 일본인에게 세기말적 위기감을 더해 주었다.

섬나라 일본은 위기감이 팽배할 때 우경화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우익은 구국(救國)을 부르짖으며 등장해왔다. 일본의 우익이 위험한 것도 역사속에서 증명된다.

김교수는 "역사적으로 일본 우익은 19세기 서구에 의한 강제개항이라는 위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일본 우익은 서구적인 보수.우익과 달리 극단적 민족주의.국가주의 성향이 특징이며, 결과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공격적이다" 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우익은 1853년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면서 서구화에 대한 반감, 즉 존황양이(尊皇攘夷.천황을 옹립하고 외세를 배격함)운동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일본 우익은 강대국인 서구에 대해서는 배타적 민족주의로, 약소국인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제국주의로 전개된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국가사회주의며,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군부세력이 그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익의 역사적 전통과 특징은 ▶천황과 국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외래문화에 대한 경계▶일본의 전통과 문화존중^민족적 사명감과 권위주의적.가부장적 질서의 존중 등이다.

문제는 이런 일본의 우익 성향이 90년대 들어 일반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교수는 이런 현상을 '이념의 총보수화' 라며 "그 배경에는 '자유주의 사관(史觀)' 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작용하고 있다" 고 설명한다. 지난해 11월 일부 일본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와 관련, '종군' 이란 말을 없애고 '강제 연행' 이란 표현을 삭제한 것이 바로 이 사관의 영향이다.

자유주의사관은 도쿄대학 후지오카 노부가츠(藤岡信勝)교수가 94년 주창한 개념. 이는 일본인이 지금까지 잊어온 국가의식과 역사적 자신감을 회복하자는 사관이다.

반대말은 45년이후 강요돼온 '자학(自虐)사관' , 또는 '도쿄재판사관' . 이는 2차 대전후 전범재판과정에서 미국에 의해 심어진 죄의식 등으로 일본인들이 자신을 학대하고 비하해온 사관이란 뜻이다.

노부가츠교수는 이런 암흑시대의 사관을 탈피, 새로운 자유주의사관을 통해 일본의 진취적.긍정적 민족성을 되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사관은 '1910년 강제합병' 에 대해 '조선이 자기관리능력이 없었던 결과며, 조선인은 스스로 독립해야한다는 의지도 능력도 없었기에 당연한 귀결' 이라고 설명한다.

한교수는 "이런 우익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일본의 정계.언론계가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정치인들이 자유주의사관을 지지하는 모임을 만들고, 언론이 이를 소개하는 연재물을 게재해 우익 이데올로기가 보통 일본인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기미가요의 재등장이나 일본 자위대의 활동영역확대를 자연스럽게 부추기고 있다.

이교수는 "일본의 군비증강이 중국을 긴장시키는 등 동아시아 지역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를 완화하려면 해당국간에 대화를 나눠 안보정책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구체적 대응에 앞서 일본의 우경화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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