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두 줄 타기 계속 해야 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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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초 캐나다 밴쿠버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시내 구경을 하던 중 지하철역에 들어갔습니다. 밴쿠버의 지하철이 궁금해서였죠. 그런데 지하철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시민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뒤 익숙하게 오른편에 한 줄로 서더군요. 왼편으로는 바쁜 듯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밴쿠버에서 3년째 산림 관련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임상섭(39)씨는 “밴쿠버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자연스럽게 오른편에 한 줄로 서고 왼편은 급한 사람들을 위해 비워 놓는다”고 알려 주더군요.

귀국한 뒤 한국교통연구원 김연규 실장과 이 얘기를 나눴습니다. 김 실장은 “캐나다와 유럽 등지에선 남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 문화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우리의 에스컬레이터 문화는 어떤가요. 지하철역이 한창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에 한 줄 타기와 두 줄 타기가 뒤섞여 무척 혼란스럽죠. “한쪽으로 비켜 달라”는 이용객과 “두 줄 타기 하는데 왜 그러느냐”는 이용객 사이에 실랑이도 곧잘 벌어집니다.

한 줄 타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바쁜 사람에게 공간을 양보해 주자’는 차원에서 추진됐습니다. 그러더니 지난해 초 두 줄 타기 캠페인이 시작됐습니다. “한 줄 타기는 위험하고 사고 위험이 높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사고 현황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0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발생한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사고(총 125건) 중 ‘한 줄 타기로 인해 걸어가다가 넘어진 사고’는 13건(10.4%)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다가 중심을 잃는 등의 이유로 넘어진 사고가 87건입니다. 한 줄 타기 때문에 사고가 많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통계인 셈이죠.

정작 더 중요한 건 두 줄 타기든 한 줄 타기든 모두 관공서 위주의 캠페인에서 비롯됐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많은 경험을 통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기회가 없었던 거죠. 이 때문에 두 가지 방식 간의 충돌로 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과연 이렇게 관공서 중심의 캠페인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요.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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