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나희덕 '첫 나뭇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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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죽은 나뭇가지를 꺾어

산 나뭇가지 사이에 내려놓을 때

그것은 어떤 시작의 순간인가

그것을 알고 있기라고 한 듯

오래 두리번거리던 까치 한 마리

이미 두 집이나 세들어 사는 미루나무에로 날아간다

첫 나뭇가지를 물고

이 가지를 어디에 내려놓을 것인가

전세금 사십만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와

육교 위에서 중얼거리던 아버지처럼

- 나희덕(34) '첫 나뭇가지' 중

까치는 목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죽은 나뭇가지를 꺾어 산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 법을 알고 있다. 나희덕은 날개가 없어도 까치가 집을 짓기 위해 입에 문 '첫 나뭇가지' 에 매달려 공중을 날고 있다. 집 짓는 법을 모르는 아버지. 전세금 사십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온 아버지의 집짓기를 따라가는 미루나무 위의 날갯짓이 눈에 밟힌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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