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법자’ 골퍼에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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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16면

중견기업 부장 A는 친구와 직장 동료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했다.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선 골프가 필수’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실내 연습장에서 레슨을 받은 것은 한 달 남짓. 성격이 화끈한 A는 공이 좀 맞는다 싶자 당장 친구들과 함께 집 근처 스크린 골프방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골프의 묘미에 한껏 빠져 들었다. 버디와 보기도 구분하지 못하던 A는 이제 폼은 좀 엉성하지만 그런대로 볼을 맞히기 시작했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86>

자신감이 붙은 A는 이제 골프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상 현실과 필드는 엄연히 달랐다. 드라이브샷은 ‘난초’를 쳤고, 뒤땅에 토핑을 곁들이면서 스코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A는 골프 규칙은 물론 스코어 세는 법조차 제대로 몰랐던 거다. 로스트볼이 돼도 (2벌타가 아닌) 1벌타, OB를 낸 뒤 OB티에서 샷을 할 때도 1벌타였다. (OB티잉 그라운드에서 다음 샷을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지만) 트리플 보기를 앞두고 동반자들로부터 ‘오케이’를 받으면 그는 자신의 스코어가 더블보기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컨시드를 받으면 그때까지 타수가 자신의 스코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스코어도 제대로 못 세는데 에티켓과 매너를 알리 없었다. 벙커에 공을 빠뜨리고도 태연히 모래 바닥에 클럽을 내려놓은 채 다음 샷을 했다. 클럽을 교체할 때는 카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만히 서서 캐디에게 고함을 쳤다. “언니야~. 피칭 주라.”
뒤 팀이 오는지 마는지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홀마다 3~4개씩 공을 잃어버리는 그가 슬로 플레이가 뭔지 알리 만무했다. 이상은 필자가 A와 동반 라운드를 하며 직접 목격한 내용이다. 보다 못한 또 다른 동반자가 필자에게 부탁을 했다.

“제발 A부장에게 골프 규칙과 매너 좀 가르쳐 주세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골프 규칙을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넌지시 다른 골퍼의 매너를 빗대 이야기를 했더니 A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골프는 너무 골치 아파요. 대충 치면 되지 뭘 그런 걸 다 따지나요. 골프도 다 내 돈 내고 재미있자고 하는 거 아닌가요.”

A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재미있게 골프를 즐겨야 한다는 데 대해선 전적으로 동감이다. 문제는 그의 플레이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골프 대회에서 갤러리의 관전 태도에 대해서도 A는 자신만의 철학(?)을 드러냈다.

“축구 경기에선 훌리건이 있잖아요. 골프라고 뭐 별건가요. 퍼팅 할 때 갤러리가 움직인다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선수들이 있는데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관중들이 떠드는 것도 게임의 일부 아닌가요. 마치 야구나 축구처럼 말이에요.”

여기서 필자는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계속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에티켓을 모르는 골퍼들이 늘어나는 걸 스크린 골프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골프 규칙과 매너는 배울 생각도 하지 않고 공 맞히는 방법만 습득한 뒤 곧바로 필드로 향하는 골퍼가 많아졌다는 주장이다. 굳이 스크린 골프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A부장에게 이 말만은 전해주고 싶다. 골프와 축구는 공의 크기만큼이나 규칙과 관전 수칙이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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