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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물질 조합하는 역할 관객 참여해야 작품 완성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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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03면

1 눈의 나무(Tree of Eye)사진 Jiyen Chae2

영국 왕립미술학교(Royal Academy of Arts·이하 RA). 런던의 심장부인 피카딜리의 중간에 위치한 이 학교는 1768년 설립돼 조슈아 레이놀즈·토머스 게인즈버러·조셉 터너 등 영국 최고 작가들을 키워낸 가장 중요한 미술학교(현 3년 과정·장학금제도로 운영되는 대학원 과정)로 꼽힌다. 덧붙여, 놓쳐서는 안 될 역사적 유물작품전이나 블록버스터 전시가 열리는 매우 중요한 전시장이기도 하다.브리티시 미술계의 관학파(官學派)가 시작된 이 학교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여는 생존 작가는 아마 그가 처음일 것이다. 아니슈 카포(Anish Kapoor·55).

12월 11일까지 영국 왕립미술학교에서 열리는 아니슈 카포 전시회를 가다

영국의 국민 조각가라 할 수 있는 헨리 무어(1898~1986)가 1980년대 자신의 개인전을 준비하다가 결국 개관을 보지 못하고 죽고 난 이후, 처음으로 전시장 전관을 사용하는 대규모 전시의 주인공이 이 살아 있는 인도계 영국 작가라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즉 뉴욕과 더불어 서양 미술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런던에서, 그것도 RA 같은 곳에서, 동양적인 철학을 추구하는 현대미술 작가에게 보인 관심이다.

20세기 미술계는 서구 모더니즘의 발전과 추상미술이라는 대구조로 진행돼 왔다. 즉 서구 추상미술이 ‘주류 미술’이라는 시각언어로서 20세기의 100년을 지배해 왔던 것이다. 그런 만큼 대부분의 비서구권 미술 문화는 ‘비주류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비록 우리가 아는 액션 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락이 서예에 관심이 있었다든지, 마크 로스코의 색면화 이미지가 아메리카 인디언 디자인과 연관성을 갖는다든지, 피카소가 아프리카 원시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더욱 영역을 확장한 포스트모던 미술은 보다 다양한 문맥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관심은 타 문화 지역, 특히 아시아 미술과 동양 철학에 집중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카포가 다루는 주제와 작품의 근본적인 정신이 인도 불교 철학의 개념인 ‘예술의 자생적 힘(self- generating power), 또는 스스로 만들어지는(becoming)’ 등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 같은 추상적 개념을 시각언어로 구축해 새로운 미술로 소개할 뿐 아니라, 기존 서구 미술의 한 장르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좀 더 정신적(Spiritual) 차원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이 서구 미술계에 먹혀 들고 있는 것이다.

벌링턴하우스라 불리는 RA의 본관 중정(中庭)을 들어서면, 수십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눈의 나무(Tree of Eye)’라는 작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도송이 같은 연결구조를 가진 이 작품은 1768년 당시 RA의 첫 학장인 레이놀즈 경의 기념 조각상 앞에 대조적으로 우뚝 서 있다. 팔레트를 들고 서 있는 작가의 모습과 사람 손 대신 기계로 제작된 이 작품이 함께 서 있는 장면은 조금은 난처한 아이러니를 던져주는 듯하기도 하다.

2.Shooting into the Corner(2008-09), installed at the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009.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MAK, Vienna, Austrian Museum of Applied Arts/Contemporary Art. Photography: Dave Morgan3 Greyman Cries - Photo courtesy John Bodkin4 Hive(2009), installed at the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2009. Corten steel5.6 x 10.07 x 7.55m. Courtesy of the artist, Lisson Gallery, London,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Photography: Dave Morgan

사람들은 가까이 가서 작품을 만져보고,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그 얼굴이 수십만 개로 증폭적인 이미지로 바뀌는 모습은 마치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준다. 원구 하나에서 분자 분열을 통한 구의 이미지들이 무한 증폭되며 강한 스펙터클적 요소는 신기함과 즐거움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마치 놀이터에서처럼 사진을 찍고, 즐거워한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 심지어 뒤로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아니슈 카포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관객의 참여적 경험이 작품을 완성하는 주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작품에 대한 입장은 이렇다. 작품이 꼭 작가의 손을 통해 만들어질 필요가 없으며, 작가의 역할은 그에게 주어진 물질을 자신의 개념과 아이디어에 따라 구조화하고 조합하는 것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매우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겨진, 미술에 있어 ‘오리지널리티’라는 유일성적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반대를 제시하는 작가의 제스처다. 또한 제작 자체의 유일성적 가치보다는 작가가 작업하는 다양한 물질을 ‘작품화’시키는 개념과 그리고 그 물질 자체가 가지는 엔트로피적 에너지를 찾아 ‘작품’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2008년까지 제작된 작품들이 주로 미니멀적 단순 구조의 조각적인 형태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말하는 물질의 자생적 창조력의 개념을 대담하게 시도한 점이 두드러진다. 이런 개념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작품은 ‘스바얌브(Svayambh)’다. 전시장 5개를 연결해 움직이는 기차 레일을 설치했다. 산스크리트어로 ‘만들어지는(self becoming)’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3m 이상의 붉은 왁스 큐브 덩어리를 만들어 기찻길 위를 천천히 오가도록 한 것이다. 이 거대한 왁스 덩어리는 5개의 문을 지나다니면서 벽면에 흔적을 남기고, 계속해서 조금씩 깎아지며 변형된 덩어리가 되어간다. 전시 기간 내내 천천히 움직이며 점점 다른 모습과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구석 맞히기(Shooting the Corner)’라는 작품 또한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300t의 왁스 대포탄을 나폴레옹식 대포로 한 시간에 3회씩 발사한다. 핏빛으로 보이는 왁스의 발출은 흰 벽에 매우 공격적으로 파편을 만들며 터져버리고, 그 파편은 시간이 만드는 또 다른 액션 페인팅으로 존재하게 된다. 런던 미술계 비평가들이 최고의 전시로 뽑은(문화정보지 ‘Time Out’) 이유는 무엇보다 기획력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대미술 기획자의 입장에서, 아니 미술사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보더라도 이 전시의 기획력은 돋보인다.

“이번 전시가 회고전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작가는 “아직 회고전을 할 때가 아니며, 결코 회고전의 성격을 가지고 진행한 전시도 아니다”라고 확고히 밝혔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신작전임에도 마치 회고전인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초기 작품과 현재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잘 연계해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작가가 20대에 만든 초기 작품들은 이번에 처음 선보인 물질 규합체 같은 덩어리 작품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작가의 지속적인 연구 궤적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 준다. 런던 첼시미술대학에서 공부하며 제작한 첫 조각 시리즈로 인도의 수많은 사원에서 볼 수 있는, 향가루 같은 안료 덩어리로 제작된 작품이다. ‘붉은 꽃이 있는 산’ 같은 인도 문학을 연상시키는 시적인 제목의 작품들은 그동안 거의 볼 수 없었기에 많은 카포 애호가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또 벽이 보이듯 보이지 않게 튀어나오게 한 ‘임신(pregnant)’은 작가가 영국 조각사에 끼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하학적 추상으로 주류를 이루던 남성적 조각 계열에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이라는 새로운 시각 언어를 제시한 점에서다.

물론 카포의 작품이 공장에서 바로바로 제작돼 나올 수 있는 만큼 지나치게 상업적이 됐다는 비판과, 본 전시에 소개된 일정 작품들은 대부분 판매가 끝났다는 점, 그의 화랑이 작품 제작 후원을 통해 미술기관과 직접적 협업을 한 것에 대한 비평의 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고무적이다. 날카로운 해석과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전시 기획, 그리고 다양하게 터져 나오는 반응 및 반론들은, 울림 없는 메아리 같은 ‘발표회’로 끝나기 쉬운 우리 전시에 대한 자성을 하게 한다.


<아니슈 카포는 누구< b>
1954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18세에 런던으로 이주했다. 80년 처음으로 파리에서 개인전, 82년 파리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90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 91년 터너상 수상 등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한 부분인, 한 세기간 문화 수용정책의 결과이기도 할 테지만, 아니슈 카포의 작품은 현재 세계 여러 지역에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출신적 맥락을 최대한 활용, 인도 철학적 개념으로 작품을 승화시키고 있는 작가의 장기가 잘 발현됐다고 설명할 수 있다. 문화적 차이를 보편적 시각미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그는 서양 미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긴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술사(런던골드스미스대학, 코톨드미술연구원)와 미술경영(런던시티대학)을 공부하고 17년간 런던에서 활동 중인 현대미술기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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