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전망대] 李총재 '포용력', 타당서 공략 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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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흔히 한국 국민은 정치에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고 한다. 윗물이 맑기를 기대하면서도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 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언뜻 상호 모순되는 듯한 두가지 잣대는 그 지향점이 다르다. '윗물' 얘기는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개혁성을, 후자는 정치인의 정치력.포용력을 강조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공천 후유증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 그의 정치적 포용력에 의문을 갖는 국민도 늘어났다. 그 결과 민주당에 오차범위 내까지 접근했던 한나라당 지지도가 다시 떨어지고 있다는 게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다.

지금의 총선 국면은 포용력 부족이란 비판에서 벗어나려는 李총재의 시도와 타당의 이 대목에 대한 집요한 공세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민주국민당(가칭)창당에 여념이 없는 김윤환(金潤煥).이기택(李基澤)창당준비위 부위원장이 부각하려 한 대목이 "李총재로부터 배신당했다" 는 것이었다.

이런 호소가 어느 정도 먹혀 민국당은 영남지역에서 터를 잡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총선에서 제1당을 노리는 민주당은 ' "李총재를 비판.반대한 인물은 예외없이 낙천됐다" (鄭東泳대변인), ' "한나라당 분열은 李총재의 대권욕으로 내부 모순이 폭발한 때문" 이라는 등 李총재의 포용력 부족을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지는 않는다. 1992년 대선 때 '부산 복국집 사건' 과 같은 역풍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민주당 지도부에 입조심을 거듭 당부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을 챙기되 야당 성향의 표가 결집되는 계기를 만들어줘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가능한 한 선거 이슈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金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열린 '2.28 민주의거 40주년 기념식' 에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이 참석한 적 없는 행사에 金대통령이 내려간 것은 李총재와 대비, 정치적 포용력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한나라당의 유일 야당 자리가 민국당 창당으로 흔들리는 틈을 타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 이한동 총재는 "자민련은 야당" 임을 선언해버렸다.

이회창 총재도 만회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李총재가 지난달 25일 전격적으로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하고 기자회견에서 '내 탓' 임을 거듭 강조한 것이나, 선대본부장을 교체하고 측근들을 주변에서 물린 것은 '그릇'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李총재가 정치적 포용력 문제를 극복한다면 3金 이후의 대안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 문제는 다음 대선 때까지 李총재를 괴롭힐 것이다.

김두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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