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수목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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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 아름다워
금수강산이라고 불렀다지.

하지만 지금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로 그 땅은
묘지로 기운 누더기…

이번 주말에 자손들은
그 사이 사이로
예초기를 메고
조상묘 벌초를 하러 간다.

생전에 못다한 효도가
한이 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가는 길이 아무리 막혀도
게을리하는 이가 없다.

전국의 묘지는 2000만기.
서울의 1.6배 면적이란다.
'묘지 공화국'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매년 20여만기가 추가돼
여의도 면적의 1.2배,
전국 공장 부지의 세 배를 넘는
산이 묘지로 바뀐단다.

목재 소비량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공장 지을 땅이 없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다는데…

이대로 가면 앞으로 10년 안에
집단묘지 공급이 바닥나고
50년 후에는 이 땅 어디에도
묘지를 쓸 수 없게 된다지.

벌초도 성묘도 할 사람이 없어
쓸쓸히 퇴락해 가는
임자 없는 무연분묘가
70%나 된단다.

자연의 품에서 태어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인간세상을 떠나서까지
후손들에게 짐을 지워야 하나.

*평생을 나무 연구에 바쳐 온 김장수 전 고려대 농대 학장의 장례식이 지난 8일 자연친화적인 수목장(樹木葬)으로 치러졌다. 화장한 고인의 유골은 생전에 아끼던 50년생 참나무 밑 땅속에 안장됐다. 참나무에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명패만 걸렸을 뿐 봉분 등 아무런 인공물도 설치되지 않았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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