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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해도 사과 못하면 말짱 ‘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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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일본인들. 올해 한국 동북아역사재단이 한 조사에서 한국에 사과해야 한다는 일본 국민의 답변이 사과할 필요 없다는 답변보다 앞섰다.

이코노미스트 ‘위대한 비즈니스 사상가 50인(미국경영자협회)’ ‘가장 영향력 있는 코치(비즈니스위크)’ ‘최고의 경영 코치(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비즈니스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가장 신뢰할 만한 조언자(영국 이코노미스트)’ 등으로 선정된 사람이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십 코치’라 불리는 경영 컨설턴트 마셜 골드스미스다.

‘사과의 기술’ ? 리더십 개발 위한 첫 단계 #‘하지만’ ‘그러나’는 갈등 더 키워 … 피드백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그가 저술한 책 6권은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필독서로 선정됐고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60여 명이 그에게 개인 코칭을 받았다. 일대일 코칭을 받으려면 25만 달러를 내야 한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의 책 『일 잘하는 당신이 성공을 못하는 20가지 비밀(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은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이 더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하는 스타일 ‘덕분’에 성공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면 앞으로도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정말 그럴까? 골드스미스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잘해 온 ‘덕분’이 아니라 못한 점이 ‘있음에도’ 잘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성공을 지속하기 위해 버려야 할 습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도한 승부욕, 지나친 의견 개진, 쓸데없는 비평, 파괴적인 말, 부정적 표현, 잘난 척하기, 격한 감정, 반대 의견 표출, 정보의 독점, 인색한 칭찬, 남의 공 가로채기, 변명, 핑계, 편애, 사과하지 않기, 경청하지 않기, 감사하지 않기, 엉뚱한 화풀이, 책임 전가, 자기 미화. 이상이 일 잘하면서 성공 못하는 사람이 가진 특성이다.

이 20가지 습관은 일이 아닌 관계에 대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골드스미스는 사과하지 않는 습관에 대해 비중 있게 다뤘다.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가 말하는 사과란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사과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먼저 피드백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옷을 차려입고 거울을 보면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거울은 나와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주위 사람의 솔직한 피드백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골드스미스는 자신에 대한 진실은 다른 사람의 피드백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골드스미스는 코칭을 시작할 때 상대에 대한 진실을 파악하려고 그 주위 사람들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받는다.

그리고 이 피드백을 기반으로 리더가 잘못에 대해 특정인에게 먼저 사과하게 한다.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진정한 개선 작업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잘못한 게 ‘있음에도’ 성공

골드스미스는 한 대기업 중간관리자인 베스를 코칭하면서 그가 상사·부하와는 잘 지내면서 동료와 잘 지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베스의 동료들 피드백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하비라는 동료와 자주 다퉜고 베스는 복수심까지 품었다고 했다. 골드스미스는 베스에게 먼저 하비에게 사과하고 관계를 개선하라고 조언했다.

베스는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골드스미스가 코칭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결국 하비에게 사과했다. 뜻밖에 하비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신사답지 못했다고 고백했고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이처럼 골드스미스는 리더십 개발을 위해 밟아야 할 첫 단계로 사과를 꼽는다. 그는 사과를 돋보이게 한 사례와 반대 사례를 인용했다.

전자는 뉴욕에서 벌어진 테러와 관련해 9·11 조사위원회에서 리처드 클라크가 한 사과다. 리처드 클라크는 당시 미국의 국가안보위원회 대테러 최고자문담당관이었다. 그는 청문회에서 질문을 받기 전에 “정부가 여러분을 실망시켰다. 여러분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실망시켰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을 실망시켰다. 우리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실패했으므로 할 말이 없다. 이런 실패와 실망에 대해 … 여러분의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가 사과한 배경과 의도에 대해 여러 추측과 비난이 따랐지만 골드스미스는 국가와 희생자 가족들에게 필요한 행동을 했고 훌륭한 ‘정화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전 CEO인 필 퍼셀은 사과 효과를 감소시켰다. 2001년 이 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거래 회사에 대한 우호적인 보고서를 작성해 공익을 훼손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들은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5000만 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냈다. 금전적 배상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사과의 한 종류다.

그런데 필 퍼셀이 다음 날 연설에서 “이 사건에 대해 벌금을 냈다. 하지만 잘못해서 낸 것이 아니며, 더 큰 벌금을 낸 회사들도 있다”고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골드스미스는 모건스탠리가 벌금을 낸 것은 실수를 인정한다는 뜻이고 일종의 사과로 비칠 수 있는데, 이를 다음 날 CEO가 번복해 오히려 사과를 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두 사례를 소개하며 골드스미스는 사과할 때 반드시 이것만은 지키라고 말한다. 바로 ‘그러나’ ‘하지만’ 같은 접속사를 쓰지 말라는 것. 그는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 뒤에 다른 어떤 말도 덧붙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때 그랬던 것은…’ 식으로 이유를 붙이기 시작하면 사과의 의미가 퇴색하고 갈등만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벌금은 냈지만, 잘못은 안 해?

여기에서 사과 뒤에 ‘어떤 말’도 덧붙이지 말라는 것은 조직 내부에서 리더로서 자기 변화를 꾀하고자 할 때, 구성원들의 피드백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한 충고다. 개인 간 사과 혹은 정부나 기업의 공적 사과에서 일정 수준의 해명은 물론 필요하다.

상대방이 사실과 명백히 다른 오해를 하고 있을 때 더욱 그렇다. 골드스미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해명은 결국 충돌로 끝날 수 있는 점을 염려한 것이다. 이런 충돌은 진정한 사과의 효과라고 보기 어렵다. 한국 동북아역사재단이 지난 8월 한·중·일 세 나라 수도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10월 19일 발표했다. 이 결과에서 특히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사과해야 한다는 일본 국민의 의견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앞선 것이다. 2007, 2008년에 해야 한다, 할 필요 없다는 의견이 각각 38% 대 50%, 41% 대 54%였다. 올해는 사과해야 한다는 답변이 49%를 차지했다. 사과할 필요 없다는 답변은 30%로 크게 줄었다.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 없이는 진정한 태도 변화가 불가능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리더로서 태도 개선을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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