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하랄트 뮐러 '문명의 공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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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은 구제불능의 결함을 안고있는 위험한 이론이다.잘못된 통계와 억지 주장을 근간으로 냉전시대의 흑백논리를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국제관계학 교수이자 헤센 평화 및 갈등연구소 소장인 하랄트 뮐러가 1998년에 펴낸 '문명의 공존' 은 헌팅턴의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푸른 숲 펴냄.독문학 박사 이영희 옮김.3백60쪽.1만4천원)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의 사뮤엘 헌팅턴 교수는 96년 펴낸 '문명의 충돌' 에서 서로 다른 문명은 그 핵심국의 지휘하에 충돌하게 마련이며 그 결과는 핵전쟁의 소용돌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명간의 접촉면적과 그에따른 충돌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서구 기독교 문명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유교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동맹이라는 악몽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뮐러교수는 '문명의 공존' 에서 헌팅턴의 가설, 통계자료, 주장을 철저히 반박한다.예컨대 헌팅턴은 '이슬람의 피묻은 경계선' 이라는 명제를 세우고 이슬람 문명은 유난히 분쟁을 많이 일으킨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통계는 바다를 끼고 있는 다른 문명에 비해 이슬람 국가들의 육지 국경선이 유난히 긴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뮐러는 공박한다.

또 헌팅턴은 중국과 북한의 대 이슬람 지역 무기판매를 지적하지만 미국의 판매량은 그 10배가 넘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뮐러는 지적한다.

세계가 협력의 질서를 확대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중국의 도전' 이나 '일본 주식회사' '이슬람 근본주의' 가 아니라 서구사회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이 뮐러의 결론이다.

그는 폐쇄가 아니라 개방을 처방으로 삼으면서 강자인 서구사회가 협력과 질서를 위해 약자인 비서구 사회에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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