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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의 기적’일군 임계화 전 교장, 내달 미림여고 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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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바로 이 사람이야.”

지난달 21일 아침 미림학원 김기병(72·롯데관광개발·동화면세점 대표이사 회장) 이사장은 중앙일보 1, 5면 기사를 읽고 무릎을 쳤다. 꼴찌 학교였던 경기도 용인시 풍덕고의 교장으로 부임해 5년 만에 수능 하위권(6~9등급) 학생을 5분의 1로 줄인 임계화(62·여·사진) 전 교장의 리더십에 관한 기사였다.

그는 서울 관악구에 있는 미림여고의 옛 명성을 되찾아올 교장을 찾고 있었다. 미림여고는 1980년대만 해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배출했던 학교였다. 하지만 외국어고 등에 인재를 빼앗기면서 서울대 합격자 수가 99학년도 11명이던 것이 2009학년엔 단 한 명도 없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김 이사장은 “추석과 설 당일을 제외하고 1년 내내 교실 문을 열었던 임 전 교장의 열정이 내 마음을 샀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임 전 교장을 학교로 모시기 위한 김 이사장의 ‘러브 콜’이 이어졌다. 그 결과 임 전 교장은 다음 달 4일 미림여고의 교장으로 취임한다. 개교 30년째인 이 학교의 첫 여성 교장이자 미림여고 교사 출신이 아닌 첫 번째 외부 교장이 탄생한 것이다.

◆"세가지 조건 지켜달라”=김 이사장의 영입 지시를 받은 재단 관계자가 곧바로 임 전 교장에게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임 전 교장은 “2주일 후에나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김 이사장은 직접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꼭 만나고 싶다. 내가 어디로 찾아가면 되느냐”고 했다. 이틀 뒤 김 이사장은 임 전 교장이 나온 부산여고 동문회 행사장까지 쫓아갔다. 김 이사장은 대뜸 임 전 교장에게 “우리 학교 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뜻밖의 제안에 놀란 임 전 교장은 “학교 경영 노하우는 얼마든지 전해드리겠다”며 “사립학교이니 오래 근무한 교사들 중에서 인재를 찾아보시라”며 거절했다. 올 2월 정년 퇴직한 그는 “한국교원대에서 교장 임용 예정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어 여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올해 고교 선택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몇 차례의 전화 끝에 약속을 또 잡았다. 이번엔 임 전 교장 부부를 함께 만났다. 풍덕고 교장 시절 과로로 건강이 나빠졌다며 걱정하는 남편에게 김 이사장은 “교장실에 침대를 놔 주겠다”며 설득했다. 임 전 교장은 “더 봉사하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다”며 교장직을 수락했다. 임 전 교장은 대신 김 이사장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연봉을 많이 달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교장이 하는 일에 재단이 개입하지 말고 ▶1년에 두 차례 교사 연수비를 지원해주고 ▶수업을 개선할 테니 지원을 아끼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임 전 교장은 “교직원들이 그동안 재단에 말 못했던 불만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외부인이 교직원들과 인간적인 신뢰를 쌓고 학교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쏟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 이사장은 “모두 들어주겠다”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임 전 교장은 “교장은 교사들이 교육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교육에만 전념하도록 도와주고 동기 부여를 하는 사람”이라며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학교를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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