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71> 소유보다 센 무소유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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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풍경 1 :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는 베스트셀러죠. 덕분에 ‘무소유’란 말도 널리 퍼졌죠. 그런데 사람들에게 “무소유가 뭐죠?”하고 물으면 우물쭈물합니다. “어렴풋한 그림은 있는데 딱 잘라서 말하긴 어렵구먼.” 그래서 다시 묻죠. “어렴풋한 그림은 어떤 거죠?” 그럼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서 내밉니다. “재산도, 가족도 뒤로 하고 산속에 들어가 사는 모습”“나의 물건, 나의 재산을 자꾸자꾸 털어서 점점 단출해지는 모습”“아무런 소유물도 없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다니는 나그네의 삶”등 다양하죠.

공통점은 있더군요. “물질적으로 점점 가난해지는 삶”입니다. 다시 말해 “현대인에게 부담스런 삶”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무소유’를 동경하면서도 “나하고는 상관없는 삶”이라며 등을 돌리고 맙니다. 과연 ‘무소유의 삶’은 어떤 걸까요.

# 풍경 2 : 예수님은 말했죠.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혹은 밧줄)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복음 19장24절) 애매하죠. ‘착한 부자’도 있고 ‘악한 부자’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왜 낙타보다 부자가 더 어렵다는 걸까요. 과연 예수님이 말한 ‘부자’는 어떤 부자일까요.

# 풍경 3 : ‘무·소·유(無·所·有)’란 세 글자를 들여다보세요. ‘무(無)의 처소(所)가 유(有)다.’ 그걸 풀이하면 ‘없음이 있음 속에 있다’가 됩니다. 이번엔 거꾸로 읽어보세요. ‘유·소·무(有·所·無)’. ‘유(有)의 처소가 무(無)다.’ 풀이하면 ‘있음이 없음 속에 있다’가 되죠. 그걸 붓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표현했죠. 다시 말해 ‘무소유=공즉시색, 유소무=색즉시공’이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삶은 경쟁이잖아. 소유욕도 없이 어떻게 상대를 이길 수 있겠어?” “욕망이 없다면 결국 어떠한 성취도 없는 것 아냐?” “무소유는 정말 도인이나 성자의 일이지.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아.”

과연 그럴까요? 운동 선수를 보세요. 감독이나 코치는 항상 “긴장을 풀라”고 말하죠. 축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골프도 그렇고, 피겨 스케이팅도 그렇습니다. 박지성도, 이승엽도, 신지애도, 김연아도 마찬가지죠. 몸에 힘이 들어가면 뻣뻣해지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제 실력이 나올 수가 없는 거죠.

운동뿐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꽈∼악!’ 붙들고 있다면 긴장을 하게 마련이죠. 힘이 들어가니까요. 동시에 우리의 하루가 경직되고, 우리의 삶도 뻣뻣해지는 겁니다. 왜냐고요?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자연스런 통로를 막기 때문이죠. 대상은 물질적 재산뿐만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 현재의 욕망, 미래의 불안 등 내 마음이 뭔가를 ‘꽈∼악!’ 틀어쥐고 있다면 그게 바로 ‘소유의 삶’이 되고 말죠. 그때 우리는 ‘부자’가 되는 겁니다.

그럼 ‘무소유의 삶’은 뭘까요? 그렇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틀어쥐고 있던 마음의 손아귀를 푸는 겁니다. 그럼 되묻겠죠. “그렇게 힘을 빼면 목표도 없고, 도전도 없고, 성취도 없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지지고 볶는 일상은 우리 눈앞에 주어진 현실이죠. 그건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긍정의 대상이죠. 그 속에서 힘을 뺀 슈팅, 자연스런 스윙, 걸림 없는 점프를 하는 겁니다.

왜냐고요? ‘소유의 에너지’보다 ‘무소유의 에너지’가 더 크니까요. 내 안에서 분출되는 무한한 에너지를 ‘집착’이란 이름으로 막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소유의 삶을 사는 집착의)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어렵다”고 하신 거죠. ‘소유의 삶’에 가까울수록 바늘구멍은 좁아지고, ‘무소유의 삶’에 가까울수록 바늘구멍은 넓어집니다.

‘무소유’를 오해하지 마세요. 마음을 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슈팅을 접고, 스윙을 부정하고, 점프를 포기하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집착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무소유의 힘, 무소유의 에너지’죠. 그래서 중국의 육조 혜능 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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