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일본판 색깔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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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6일 실시된 일본 오사카(大阪) 지사선거에서 여성후보가 사상최초로 당선돼 한국에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일본에서 여성지사가 탄생한 것은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지 55년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이 선거에는 또 하나의 얘깃거리가 있다. 일본공산당이 추천한 후보가 비록 차점낙선에 그쳤지만 득표수가 처음으로 1백만표를 넘어 자민당을 비롯한 연립여당을 긴장시킨 것이다.

일본의 정당들을 색깔별 '스펙트럼' 으로 나열한다면 공산당은 가장 왼쪽에 있는 정당이다. 일제하에는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반대해 '비(非)국민' 이라는 호칭까지 들었고, 탄압받은 끝에 옥사한 당원도 다수다.

중국.북한.옛소련의 공산당과도 다른 독자노선을 택해 불화를 빚다가 이중 중국과는 재작년 화해무드로 돌아섰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3년 전부터 '한국' 으로 공식호칭하고 자체 기관지의 서울 주재원을 두는 등 우호노선을 택하고 있다.

일본공산당은 재작년 참의원선거 비례대표에서 사상 최고인 8백19만표를 얻어 정가를 놀라게 했다.

당시 자민당 1천4백13만표, 민주당 1천2백21만표에 이어 공산당이 당당히 3위를 차지했으니 기성정당이 위기감을 느낀 것도 당연하다. 지방의회 의원수에 관한 한 놀랍게도 공산당이 제1당(총4천1백명)이다.

재작년 말 현재 공산당 계열 지방의원수는 4천1백명으로 자민당(3천6백4명)을 웃돈다. 이는 '행정부의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 는 이유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단 한푼도 받지 않고 기관지 판매수입을 주수입원으로 삼는 외고집과 일관성, 특유의 지역.주민 밀착정책 덕분으로 풀이된다.

일본공산당이 각종 선거에서 선전(善戰)한 데다 최근 자민.자유.공명당의 연립정권에 맞서 제1야당 민주당과 함께 야당연합전선을 형성할 움직임을 보이자 자민당 간부들이 일종의 '색깔론' 으로 보수적인 국민정서에 호소하고 있어 흥미롭다.

"공산.민주당이 집권하면 일본은 이상한 나라가 된다. 공산당은 두터운 화장(化粧) 밑에서 공산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모리 간사장)" "천황제를 부인하는 공산당은 일본헌법 위에 있는 셈이다(노나카 간사장대리)"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색깔론이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색채 정당들간의 승강이라는 점이 일본과는 다르다.

현재 한국의 정당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이라면 아마 민주노동당일 터인데, 이 정당의 대표는 선거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어제부터 단식농성 중이다.

그나마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고, 소모적 정쟁이나 지역감정 살피기에만 열중하는 기성정당들도 '긴장' 하는 기색이 전혀 엿보이지 않으니 안쓰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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