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형근 문제'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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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이 며칠 째 한나라당 당사를 찾아가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정형근(鄭亨根)의원을 내놓으라, 못내놓겠다로 다투는 모양새는 정말 딱하기 짝이 없다.

처음 체포를 시도했던 때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치더라도 지금은 정당한 법집행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인데도 왜 이런 상황이 빚어지는가.

이른바 '정형근 문제' 가 근본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띤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 진행과는 별도로 정치권이 이 문제를 결자해지(結者解之)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鄭의원이 연루된 고소.고발 사건은 모두 24건이라고 검찰이 발표했다.

이중 鄭의원이 고소한 것이 15건이고 나머지 9건은 상대가 제기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부산집회에서의 '빨치산식' 발언이라든가 언론대책 문건을 폭로하면서 엉뚱한 사람을 작성자로 지목한 것 등 여야간 정치공방 와중에 벌어진 명예훼손 사건이 대부분이다.

크게 보면 정치권에서 흔히 벌어지는 '말(言)의 포격전' 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물론 정치공방에도 해서는 안될 말이 있다.

특히 鄭의원은 그런 한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근접했거나 아예 선을 넘어버린 적도 여러 차례였다.

그제만 해도 그는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접은 채 '좌익광란의 시대' 라거나 '하의도가 만경대인가' 라는 따위의 막말들을 쏟아 놓았다.

우리가 鄭의원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는 것도 그의 행위나 발언이 문제될 게 없다거나,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라는 시각에서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법집행의 형평성 문제도 일단 논외로 돌리자. 주목되는 것은 鄭의원 건(件)을 포함, 이런 유(類)의 사건 대다수가 정치권의 자결력(自決力).정치력 빈곤에서 초래됐다는 점이다.

유난히 정치공방이 치열했던 지난해 여야는 툭하면 고발장 싸들고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를 찾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때문에 여야 총재는 지난해 말 회견이나 발표를 통해 '국민 대화합' 을 제창하거나 총재회담을 제의했고, 그 과정에서 정치공방 도중 양산된 고소.고발을 서로 거두는 쪽으로 한때 의견이 접근한 적도 있었다.

정치권이 鄭의원 문제를 능동적으로 풀지 못하면 무엇보다 이번 총선의 혼탁.과열이 가장 우려된다.

이미 단순한 법집행 차원을 넘어 선거 이슈로 비화하는 조짐이 뚜렷한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해서 얻을 것은 저질 폭로전과 망국적 지역감정뿐이다.

鄭의원도 국회 회기 중 검찰 자진 출두를 약속했다.

정치권은 정치소모전의 '찌꺼기' 들을 정치권 안에서 스스로 해소하고, 생산적인 정책대결 쪽으로 '싸움의 장(場)' 을 바꾸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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