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2000] 인터넷이 독 될 수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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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설날 명절의 화제는 역시 정치와 주식 투자, 그리고 인터넷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과 관련,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친구의 사연은 '설마' 가 현실이 되는 기막힌 이야기였다.

1년 동안 컴퓨터 타령을 하는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컴퓨터를 사준 친구는 그 이후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새벽 무심코 아들 방에 들러 그 애가 클릭한 인터넷 주소를 뒤져본 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의 인터넷 순례기는 대부분 음란 사이트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말 걱정되는 것은 '야, 너 멜(전자우편) 받았어' '정말 방가(반갑다)' '너 꼬댕이(어울리지 못하는 친구)아냐' 라는 알아듣지 못할 대화였다.

그러나 이 친구는 아들을 질책하지 않고 대화를 소홀히 한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아들과의 대화에 신경을 쓰고있다고 한다.

미국에 이민간 부모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아이들은 순식간에 모국어를 잊고 영어에 숙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앞으로 자식과 부모지만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이상한 가족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이같은 현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어떤 신기술이 나온다고 해도 '인간' 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첨단 컴퓨터가 나오고 인터넷으로 지구촌을 넘나든다 해서 평소 말이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교적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최첨단은 최악의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즉 인터넷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데도 무조건 '최첨단' 이 '최선' 이라고 맹신하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최첨단을 성숙시키는 것이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첨단 맹신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을 새로운 주체로 성숙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 등 사회 구성원간의 상호 학습이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퇴출' 과 '젊은 피' 라는 망령은 주기적으로 사회를 떠돌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사회는 '학습사회' 가 돼야 한다. 화면만 바라보지 말고 '클릭하고, 배우고, 대화하자' 를 외쳐보자.

조형준<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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