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참 이장춘대사 외교부 인사 비판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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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장춘(李長春.특1급)본부대사가 10일 외교통상부의 잦은 인사교체를 '구멍가게 주인도 자주 바뀌면 장사가 잘 될리 없다" 며 정면 비판해 파문이 일고 있다.

李대사는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김대중 정부 출범 1년10개월만에 세번째 외무장관이 등장했고 ▶신설 9년도 안된 외교정책실에 11번째의 장이 임명됐다" 며 "그럴 때마다 국제회의 수석대표가 바뀌게 돼 국제외교가의 우스갯거리가 돼왔다" 고 주장했다.

파문이 일자 李대사는 사표를 냈다.

◇ 기고문 골자〓미국 국무장관은 대체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한다.

독일이 통일을 달성할 때 겐셔는 연립정부의 파트너로서 18년째 외무장관이었다.

우리는 이번에도 외무장.차관을 바꾸었다.

지난 1년10개월간 '국비 외유' 에 가깝게 지내다가 퇴임한 재외공관장과, 1년도 못돼 본부 국장급 간부에서 물러난 사람이 50여명에 이른다.

60여명의 직급대사를 법제상 둘 만큼 대사직함을 남용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외무부가 그 간판을 외교통상부로 갈아 달았지만 통상장관을 없애버린 꼴이 됐으며 외무부의 정체성만 흐렸다.

미국.일본을 상대로 정상회담을 자주 한다고 괄목할 특효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중국을 상대로 '온천외교' 를 한다고 신통한 효험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러시아 대사를 자주 바꾼다고 빨리 옥동자를 분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심경토로〓기고문 발표 뒤 李대사는 전화인터뷰에서 전임장관들과 여권(與圈)을 함께 비판했다.

- 인사의 문제점이 뭔가.

"현정부의 전임 외교장관(朴定洙.洪淳瑛)들이 학연에 얽매인 정실인사를 해 뒤죽박죽됐다.

洪전장관은 고교후배를 차관에 앉혔고, 여권실력자가 청탁을 하면 안들어주고 해서 문제가 생겼고, 장관직에서 밀려났다.

권력을 갈라먹어야 하는데…. 권력과 장관이 외교관 인사에 관여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 기고한 이유는.

"평소 신념을 정리해 내가 직접 기고요청을 했다.

정치적 배경은 없다."

- 인사 불만 때문에 기고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외무부의 개혁을 위해 수없이 건의를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왕따를 당했다."

- 왜 사표를 냈나. 압력은 없었는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였고 떠날 때가 돼 사표를 냈다.

압력이 있었으면 사표를 안냈을 것이다."

◇ 외교부 반응〓이정빈(李廷彬)장관은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의 배석 일정탓에 사무실을 비웠는데 보고를 받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는 게 실무자들의 얘기다.

외교부는 처음엔 "대꾸할 이유없다" 고 일축했으나 저녁 들어 강경분위기로 돌변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의견도 참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국장들은 회의를 갖고 오후 6시20분 장철균(張哲均)대변인 명의로 "李대사의 기고행위는 고위공직자의 품위를 저버리고 공직사회 기강을 문란케 한 것으로 용납할 수 없다" 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일부 실무자들은 "외교부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용기있게 알렸다" 고 평가했다.

◇ 이장춘 대사〓마산고-서울대정치학과를 나온 그는 현직 최고참 외교관(고시13회.60세). '선이 굵다' '독선적이다' 는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리핀 대사시절인 98년초 외무부를 외교통상부로 바꾸는 조직개편을 비판하는 글을 언론에 실었다.

5공 초기 청와대 외교비서관을 지냈을 때 대외창구를 외무부로 일원화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이철희.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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