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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엔 학교가서 논다…진도마쳐 대부분 자율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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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도대체 어떻게 수업을 해야할지 애매합니다. 3학년은 내신성적까지 모두 정리했는데 무엇을 가르칠지 모르겠습니다. 1, 2학년도 평가가 이미 끝나 파장 분위기가 완연합니다. " 지난해 임용된 서울 성동구 S중학교의 한 영어교사 말이다.

전국 초.중.고교들이 지난 7일까지 거의 모두 개학했다. 하지만 대부분 겨울방학전 이미 진도를 마쳐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게다가 학생들은 새학기를 앞두고 들뜬 분위기다.

그렇다고 방학을 늘릴 수도 없다. 법정 수업일수(2백20일)와 수업시수를 채워야 한다. 그래서 "2월은 학생이나 교사 모두에게 괴로운 시간" (서연중 박창탁 교무부장)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A고교 1학년 교실. 개학한지 1주일이 넘었다. 한참 수업이 진행돼야 할 오전 11시지만 학생들은 자율학습 중이다.

교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교무실에서 생활기록부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학교는 개학 이후 지금까지 전학년이 자율학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경기도 M중학교 3학년 송모(36.여)교사는 "2월이 되면 골치가 다 아프다" 고 했다. 생활기록부.건강기록부.성적표 정리 등 잡무가 한 짐이다.

특히 최근 전산화된 생활기록부 입력에 익숙지 않아 아예 방학중에도 자발적으로 학교에 나갔다. 게다가 인사이동까지 겹쳐 싱숭생숭하다.

"그래도 학생들이 학교만 잘 나오면 좋겠어요. 결석한 학생집에 매일 저녁 전화를 걸어 '제발 유종의 미를 거두자' 고 사정한다" 고 했다.

이같은 상황속에 중.고교의 2월 교실은 자율학습만 하는 '도서관' 이나 비디오 관람관이 된다.

서울 연희동 B고교는 2월 수업을 위해 최근 대량으로 비디오 테입을 구입했다. KBS영상사업단이 제작한 동강댐.한국의 자연 등 다큐멘터리 등을 구입해와 틀어주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잡담과 낮잠으로 소일하고 있다는 게 교사들의 솔직한 토로다.

그나마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경우 인근 과학관.박물관 등을 찾아 현장 학습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 또한 교육효과는 미지수다.

서울교육과학연구원의 한 교육연구사는 "개학하자마자 단체관람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면서 "과학관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달라고 인솔 교사와 학교측에 요청하고 있다" 고 말했다.

2월 수업 파행은 현행 3월 학기제 때문이다. 겨울방학이 12월 20일~2월 7일(6주)인데 연간 수업일수를 채우려면 다음 학년 시작 전인 2월에도 수업을 해야한다.

그래서 정규수업이 2학기로 끝났지만 학생을 다시 학교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기제 변경이 종종 거론된다.

1997년 교육개혁위원회에서 9월 학기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문용린 현 교육부장관이 당시 주도해 만든 이 안은 9월신학기제와 여름방학 연장 등의 내용을 담았다.

2월 한달의 허송세월은 국가적 낭비라는 요지였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 따른 혼란, 정부 회계연도와의 격차에 따른 예산회계의 혼란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장을 지낸 김진경 교사는 "9월학기제는 혼란이 심한 만큼 2월 첫째주~6월 첫째주를 1학기로, 8월 셋째주~12월 셋째주를 2학기로, 여름방학을 9주로, 겨울방학을 5주로 하면 2월 수업의 정상화가 가능하다" 고 주장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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