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학 '파산 예고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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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육부가 그저께 '선진국 수준 대학교육 강화 방안' 을 내놓으면서 '경영상태 예고제' 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오는 2003년부터는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보다 많아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고, 이렇게 되면 재정 악화로 파산하는 대학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전에 재정상태를 파악해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대학 파산 경보' 인 셈이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이 제도의 시행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부분 우리 대학들은 재정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지방 사립대는 1만명이나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빚에 쪼들리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전망은 더 어둡다.

고등학교 재학생 수가 줄고 있고 조기 외국유학까지 자유화돼 대학도 망하는 시대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파산 예고제' 는 학생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시행에 앞서 교육부는 정책당국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학생부족 사태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해당 대학에 일차적 책임이 있으나 장기적 안목에서 대학교육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지 못한 교육부 탓도 크다.

언제는 대학설립 기준을 완화해 너도나도 대학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가 지금 와서 '파산 예고제' 로 갑작스레 선회한다면 행정편의주의의 극치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대학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특성화와 자체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정책적 유도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 적신호가 켜지기 전에 재정운영에 대한 감사권을 충실히 행사해야 한다.

정부가 손 놓고 있다가 사형선고나 내리는 일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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