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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가시나무'가 10년만에 다시 뜨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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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당신의 쉴 곳 없네…" 란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었다.

1988년 포크 듀엣 '시인과 촌장' (하덕규.함춘호)이 들릴 듯 말 듯 잔잔하게 불러 묘한 쓸쓸함과 애틋함을 느끼게 했던 '가시나무' 란 곡이다.

최근 이 노래가 다시 불려지면서 가요계에 '가시나무' 돌풍이 불고 있다. 이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은 요즘 인기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조성모. 이 곡이 타이틀 곡으로 수록된 그의 2.5집 앨범 '클래식' 은 24일 발매되기 시작해 하루 3만~4만장씩 팔리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이은미의 리메이크 앨범 '노스탤지어' 에도 이 노래가 수록돼 있고 이에 앞서 남성 듀엣 유리상자도 이 노래를 불렀다는 점. 처음 소개됐을 당시 그다지 많은 인기를 끌지 못했던 노래 한 곡이 10년을 넘어서 새삼 청자(聽者)들의 가슴을 울리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좋은 노래는 뒤늦게라도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 '가시나무' 원본과 버전들

'시인과 촌장' 에 수록된 원곡은 피아노 솔로 반주에 이 노래를 지은 하덕규씨가 직접 불렀다. 조성모 버전에는 42인조 오케스트라를 동원하고 도입부와 후반부에 영화 '태양의 제국' 의 테마음악 멜로디가 삽입돼 있다.

원곡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감정을 절제해 부른 창법에 소년이 부르는 듯한 촉촉한 미성이 두드러진다. 이 곡에 대해 "원곡과는 다르지만 애절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는 평가와 "원곡의 감성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이은미 버전에는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그녀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가 얹혀 있고, 유리상자는 듀엣으로 부르는데 각자 유연한 목소리를 살리면서 원곡에 비해 감정을 불어넣는데 역점을 둔 것이 다르다.

▶ 왜 '가시나무' 인가

이 노래가 호소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기 내면에 대한 진솔하고도 자조적인 고백이 돋보이는 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가시나무란 외롭고 괴로운 내면의 풍경을 가리킨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 가고" 란 가사가 말하듯 자신의 이기심과 어둠, 슬픔 때문에 다른 이에게 위안을 주기보다는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을 묘사한다.

멜로디는 고백성 가사에 맞게 단조로우면서도 애절함이 배어 있다.

▶'가시나무' 뒤에는…

일부에선 이 노래를 CCM(현대 기독교 음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원작자 하덕규는 이 노래를 만들 당시 개인적으로 방황과 좌절의 끄트머리에 서있었다.

이 노래를 부른 직후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개인사적인 배경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씨는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 의 작사.작곡자. '가시나무' 나 '한계령' 모두 한때 좌절과 번민에 사로잡혔던 그의 인간적 면모를 엿보게 한다.

이같은 '가시나무 현상' 에 대해 대중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시인과 촌장이 부른 '가시나무' 가 남다른 감동을 전하는 이유는 곡을 만들고 불렀던 당시 그의 번민과 좌절 등 인간적 감성이 진솔하게 담겨있기 때문일 것" 이라고 분석했다.

89년부터 기독교방송 CCM프로 진행자로 활약해 온 하씨는 오는 3월 6~11일 '시인과 촌장' 콘서트(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를 필두로 음악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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