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부모 후광 믿다 낭패본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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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미국에선 지난 1일 끝난 뉴햄프셔주 예비선거 결과를 놓고 말들이 많다. 공화당의 선두주자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가 도전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49%대31%라는, 예상치 못한 큰 격차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언론들이 분석하는 부시의 패배 이유가 흥미롭다. 부시 지사는 선거 직전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과 어머니 바버라 여사를 뉴햄프셔로 모셔와 대규모 행사를 벌였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인기높은 아버지의 후광을 좀 얻어보자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미국 언론은 바로 그게 부시의 자충수였다고 지적한다. 부시 지지자들마저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이 부모 덕이나 보면서 무임승차하려는 것 아니냐" 고 등을 돌렸다는 보도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신문들은 "미 국민이 후보들로부터 원하는 것은 배경이 아니라 진취적인 용기와 자신감" 이라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앨 고어 부통령도 어떻게 해서든 '클린턴의 보호막에 둘러싸인 모범생' 의 이미지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평양 건너에서 진행되는 미국 선거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미국 대선에선 '코커스(추장들의 모임)' 라는 행사가 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열성당원들이 학교나 공회당, 아니면 당원 누군가의 집에 모여 후보들을 놓고 토론하는 것이다. 이견이 생기면 투표를 하고, 그래서 다수결로 지지후보가 결정되면 군말없이 따른다.

이런 코커스와 예비선거를 통해 뽑힌 대의원들이 7~8월의 각당 전당대회장에서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 물론 비밀선거이기 때문에 대의원들은 자신이 위임받은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에게 몰래 투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미국에선 또 선거 때가 되면 돈 한푼 못받으면서도 지지후보를 위해 자원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시민들이 넘쳐난다. 미국식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체인 것이다.

앞으로 누가 미 대선의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관심한 유권자도 상당수다. 하지만 소수일지라도 깨어 있는 당원들과 유권자들이 있는 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 민주주의의 장래는 밝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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