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나 미뤄진 선거법 개정안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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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1일 또다시 무산됐다.

'게임의 룰' 조차 마련 안된 상황에서 설연휴를 틈탄 불법·혼탁선거운동마저 우려된다.

여야 3당의 이해다툼으로 16대 총선의 '게임 룰' 인 선거법 처리가 지연되면서 정치권 밖에선 정치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선거관리를 둘러싼 혼란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조차 법안 처리가 여야 이해대립으로 무산되자 "이러다간 국회 없는 16대가 될지도 모른다" 는 개탄을 했을 정도다.

특히 정치권의 선거법 처리 지연을 지켜보는 중앙선관위와 출마예정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당장 선관위의 단속활동은 벌써부터 혼선을 빚고 있다.

중앙선관위 김호열(金弧烈)선거관리관은 "사전선거운동 위반자 적발을 둘러싼 혼란상황이 극심해지고 있다" 고 한숨을 내쉬었다.

예를 들어 A선거구와 B선거구 통합이 확실시되는 지역의 경우 A선거구의 현역의원이 통합에 대비해 B선거구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럴 경우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불법행위지만 개정 선거법이 통과되면 그 즉시 면소판결로 무죄가 돼버린다.

그러다보니 일선 선관위에선 불법을 보고 단속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일종의 총선 아노미(사회적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

金관리관은 "몇몇 통합이 예상되는 강원도 등지의 선거구에선 이런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며 "선관위 단속에 저항하는 후보들도 늘고 있다" 고 걱정했다.

법의 권위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법 개정을 앞두고 현행 법을 무시한 채 벌어지고 있는 각종 시민단체의 실정법 위반 행위에 대해 선관위가 고발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다.

1인2표제와 석패(惜敗)율제, 그리고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허용 등 유난히 새 규정이 많은 선거법 처리가 지연됨에 따라 선관위로선 유권자들과 후보들에 대한 홍보기간이 짧아지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자칫 유권자로선 자신이 던지는 표가 비례대표 선출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투표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치 신인들이 은연중 받는 불이익도 큰 문제다.

선거법 처리 지연과 상관없이 현역의원들은 법에 허용된 의정보고 활동으로 마음껏 지역구를 누비는 반면 정치 신인들은 당장 지역구 선정부터 머리를 싸매야 한다.

그만큼 자신을 알릴 기회도 줄어드는 셈이다.

여야 3당의 이해다툼 속에서 16대 총선은 출발 전부터 멍들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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