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회·서명은 허용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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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각 정당이 시민단체 요구에 따라 현행 선거법 제87조 등 일부를 개정키로 했으나 사실상 직접적인 낙선활동은 대폭 규제키로 했다.

이것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하는 시늉만 내면서 사실상 수족을 묶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아 낙선운동이 예정대로 강행될 경우 상당한 마찰과 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시민단체들은 단체의 선거개입을 금지하고 있는 선거법 제87조 및 사전선거운동에 관한 제58, 254조의 개폐와 선거운동에 관한 각종 규제조항을 완화해 지금부터라도 집회.서명.가두행진 등을 통한 자유로운 낙선활동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야 3당은 정당 후보에 대해서도 선거기간(투표일까지 16일간)에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데 시민단체에 그 전부터 낙선운동을 허용할 수 없다는 점, 낙선운동을 무제한 허용할 경우 심각한 충돌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모든 단체에 선거개입을 허용할 경우 관변단체는 물론 각종 이익단체까지 모두 나서게 돼 혼란이 극대화된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의 우려엔 일리가 없지 않다.

현재의 선거법은 선거기간 중 선거공보.벽보 및 연설회와 신문.방송의 광고 등으로만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밖의 호별방문.가두행진.서명.집회.서신발송.여론조사의 공표.광고행위 등은 모두 제한되거나 불법이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은 또 한편으로는 당원교육이나 의정보고회 등 정당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정당에 대해서는 사실상 편법적인 사전 선거운동의 길을 터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당에만 유리한 불평등 법조항을 공평하게 적용하자는 것 자체가 불공평하다.

차제에 시민단체의 선거활동을 허용하면서 다른 이익단체도 자신들의 책임하에 정치적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본다.

다만 정부지원단체나 후보자의 사조직에 대한 규제는 필요할 것이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선거운동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져 불상사가 빚어지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정치문화 수준이 백골단이나 딱벌떼가 설치던 자유당 때와는 달라졌다고 하나 지금도 폭력이 왕왕 개재하고 있고 선거전의 감정적 과열대결이 충돌을 부를 위험성은 크다.

이를 막을 제도적인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며 시민단체들도 그런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예컨대 반대집회나 서명 또는 가두행진을 허용하되 별도의 장소에서 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 정당이나 선관위가 지나치게 규제일변도로 모든 유권자의 선거활동을 불법으로 만드는 현행 선거법을 대폭 완화해 자유로운 선거활동을 보장하되, 질서를 문란케 하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행위는 엄격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개방적이면서 엄정한 선거법을 만들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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