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히코사카-조선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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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상승세땐 상대도 알아서 져주는 법인지 …

총보(1~155)〓오랜 세월 일본은 '바둑의 나라' 였다. 일본바둑은 무적이어서 20세기 초엽만해도 여성기사가 중국에 가 그곳 고수들을 상대로 전승을 거둔 일도 있다. 일본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바둑을 '일본문화' 의 하나로 세계에 알렸다. 바둑고수를 꿈꾸는 한국의 유소년들이 바둑선진국 일본에 유학한 것은 당연하다. 조훈현이나 조치훈이 그렇고 이 판의 조선진도 그렇다. 지금은 일본보다 한국이 득세하고 있다. 실력의 총량으로는 아직 일본이 강할지 모르지만 이창호를 위시한 최강자들이 한국인이고 또 미래도 일본보다는 한국이 훨씬 밝다. 그렇더라도 일본은 저력이 있다. 이 판의 히코사카9단도 일본랭킹으로 치면 7, 8위권이지만 한국 정상들과 언제든 한판 겨룰 수 있는 실력이다.

1970년 광주시에서 태어난 조선진9단은 82년 일본으로 건너가 17년만인 99년에 랭킹3위의 본인방 타이틀을 따냈다. 이 바람에 10위권 언저리에서 고투하던 趙9단은 당장 유명인사가 됐고 조치훈의 뒤를 이을 새 강자로 주목받게 됐다.

趙씨 일문이나 한국인이 바둑에 특히 강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달이 차고 기울듯이 지금은 일본이 쇠하고 한국이 때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엔 4백명이 넘는 프로가 있는데 그곳에서 조치훈.조선진.유시훈 등 한국유학생들이 정상을 휩쓰는 것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趙9단이 이 판에선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도 그의 상승세와 관계있다. 아무나 그렇게 역전승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승부가 잘 풀릴 때는 이기는 게 그리 어렵지 않고 또 이미 포기했는데도 상대가 알아서 져준다. 趙9단의 결승진출을 축하한다. 155수 끝, 흑불계승.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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