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법의식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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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민단체들의 선거법 불복종 운동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이 충격적이다. "시민단체의 선거활동 보장 요구는 국민의 뜻으로 보아야 하며 이를 법률로 규제할 수는 없다" 고 金대통령이 밝혔고 청와대 관계자는 이를 "대통령이 현행 선거법을 지킬 수 없다는 시민단체의 불복종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대통령이 현행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주장에 동조, 격려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혼탁.타락을 막기 위해 법에 금지가 명문화된 향우회.동창회의 정치활동까지 허용하는 방향으로 지시했다니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법치(法治)'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질서가 곧 법이다. 법은 지키고 싶으면 지키고 싫으면 안지켜도 되는 게 아니다.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최후의, 최소의 강제규범인 것이다. 이를 벗어나면 초법(超法)의 인치(人治)사회가 된다. 물론 사람이 만든 데다 시대상황이 급변하고 있으므로 악법도 있을 수 있고 적절치 못한 법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수시로 법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법이 고쳐질 때까지는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하는 게 국민의 도리이자 의무다.

대통령은 바로 국법 질서 수호의 최고 책임자다. 법 지키기에 가장 앞장서야 할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金대통령이 시민단체의 선거법 불복종 운동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정당 총재가 아닌 대통령 입장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온당치 않다.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은 이미 공론화됐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0% 이상이 시민단체의 낙선.낙천운동을 지지한다고 나타났고 여야 모두가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미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더구나 중앙선관위는 갈등 끝에 불과 이틀 전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이 위법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렸고 검찰은 하루 전 전국 검사장 회의를 열고 선거법의 엄정한 적용을 강조한 시점에서 대통령이 선거법 불복종 운동을 지지하고 나섰으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대통령이 여론을 중시하는 것과 영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무리 국민의 뜻에 따른다고 해도 절차나 과정은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특권 의식이나 법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마당에 과연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걱정스럽다.

시민단체의 불복종 운동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법 개정 작업 중이므로 그때까지는 현행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게 법치국가 대통령이 취해야 할 입장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 점에서 金대통령의 선거법 불복종 '지지' 는 향후 정치풍토를 지나친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으로 몰고 갈 적신호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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