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파리바게뜨의 바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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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80년대는 단팥빵·소보루·크림빵 같이 단맛을 내는 빵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파리바게뜨는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달지 않아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프랑스 바게트가 주목을 끌 것으로 보고 85년 개발에 들어갔다. 빵 껍질의 바삭하면서 구수한 맛이 누룽지와 비슷해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바게트는 호텔 베이커리만 소규모로 생산하고 있었다. 이를 대량 생산해 가맹점에 공급하려면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했다. 원래 수분이 적은 빵이어서 구운 후 네 시간이 지나면 주위의 수분을 빨아들여 쭈글쭈글해지고 질겨져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초기엔 본사에서 구워 하루에 몇 번씩 트럭으로 여섯 곳의 가맹점에 날랐지만 대중화하기엔 물량이 부족했고, 비용도 많이 들어갔다.

생각다 못한 파리바게뜨는 84년부터 식빵과 단팥빵 등 일부 빵에 적용하던 ‘휴면 생지’ 기술을 도입해 보기로 했다. 빵을 굽기 전 발효한 반죽 단계에서 발효를 멈추게 한 후 이를 가맹점에 보내 직접 굽게 하는 방식이다. 바게트는 휴면 생지를 만드는 일이 다른 어떤 빵보다 힘들었다. 다른 빵과는 달리 설탕이나 크림·과일 같은 다른 재료의 도움 없이 밀가루·소금·이스트·물의 단순한 재료 네 가지만 섞어 맛있는 생지(밀가루 반죽)를 만들어야 했다. 또 생지를 만든 뒤에도 이를 냉동하고 해동하는 절묘한 온도와 습도를 알아내는 일이 난제였다.

겉과 속의 발효 정도가 달라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해진다는 점이 더 힘들었다.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이명구 부사장은 “수많은 생지를 만들었다가 냉동한 후 해동시켜 봤지만 온도와 습도가 맞지 않아 빵이 아닌 수제비가 돼 버리거나, 속이 쫄깃하지 않고 겉은 눅눅한 빵이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회고했다.

영하 18도의 온도에서 생지를 급속 냉동한 다음 적정 온도와 습도에서 해동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어떤 온도와 습도에서 해동하는지는 기업 비밀이다. 이렇게 86년 나온 바게트는 첫 해 한 달 1000여만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지난해엔 280억원어치가 팔렸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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