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전자랜드 부진 중심에 센터 서장훈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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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프로농구 전자랜드의 박종천 감독은 시즌 전 “올해 서장훈의 활약을 지켜 봐달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팀 주축 선수인 서장훈은 잘하고 있다. 11경기에서 평균 20.4득점(3위), 7.4리바운드(10위)로 전성기에 버금가는 기록을 내고 있다. 그러나 팀 성적은 반대다. 전자랜드는 최근 9연패를 하는 등 1승10패로 꼴찌다. 박종천 감독은 8일 극도의 스트레스로 입원했다.

“개인 플레이 때문에 팀이 망가진다”는 비난을 받는 서장훈은 “내 개인 기록이 좋지 않다면 그래서 진다고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내 기록이 좋아 팀 성적이 나쁘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박종천 감독을 대신해 8일 벤치에 앉은 유도훈 코치는 “농구는 한 사람 때문에 이기고 지는 스포츠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익수 단장도 “서장훈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 전원, 코칭스태프, 프런트가 다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거들었다.

통계로 볼 때 전자랜드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3점슛과 수비력 약화다. 지난 시즌 전자랜드 3점슛 성공률은 42.5%였는데 올 시즌엔 32.1%로 뚝 떨어졌다. 반대로 3점슛 허용률은 36.0%에서 41.3%로 올라갔다. 실점 등 수비 여러 항목에서 전자랜드는 꼴찌다.

◆무거운 탱크 2대=서장훈은 열심히 뛰고 있다. 개인 기록만 챙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느리다는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동료 외국인 선수들도 모두 육중하다. 서장훈과 외국인 선수 한 명이 뛰면 무거운 탱크 두 대가 동시에 나오는 격이다.

반면 다른 팀들은 모두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출전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의 수가 1명으로 줄어들었고 3점 라인이 멀어져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전자랜드의 한 선수는 “두 명의 발이 느려 나머지 3명이 넓은 지역을 수비해야 하는데 사실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수는 “하승진의 KCC처럼 느린 팀에는 해볼 만했는데 김주성처럼 빠른 포워드가 있는 팀에는 방법이 없더라”고 말했다. 전창진 KT 감독은 “서장훈의 화력은 나무랄 데 없지만 그의 수비 부담을 대신 짊어져야 할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보다 큰 서장훈=박종천 감독은 센터인 서장훈 위주로 팀을 만들었다. 그러나 서장훈이 너무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선수는 “그동안 팀에 서장훈 같은 빅 스타가 없었기 때문에 구단 고위층에서 특별히 대우한다”면서 “감독이 윗선과 닿아 있는 선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공격을 서장훈 위주로 하면서 외곽 슈터들은 공 던질 기회도 부족하다.

한 관계자는 “과거부터 경기 중 실수를 하거나 공을 주지 않으면 서장훈 선수가 화를 냈는데 경험 없는 선수들은 위축되고 속으로 반발할 수 있다”며 “팀워크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전자랜드 선수들이 실수해도 피식 웃고 마는 등 이기려는 진지한 모습이 별로 안 보이더라”고 말했다. 서장훈 중심의 팀 운영에 대해 다른 선수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전임 최희암 감독은 “팀을 이끌어 가야 할 포인트가드에게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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