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낯익은 소리, 낯선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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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소리, 낯설은 얼굴’. 성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목소리로만 연기하기 때문에 실물을 보는 일이 드물어서다.

얼굴은 잘 몰라도 익숙한 성우의 음성처럼 ‘낯설은’이란 말도 흔히 쓰이고 있으나 어법엔 맞지 않는 표현이다. ‘낯선’이라고 고쳐야 한다. 왜 ‘낯익은’과는 다른 형태로 활용될까?

‘낯익다’는 관형사형 어미 ‘-은’을 취해 “낯익은 장소”처럼 사용하면 되지만 ‘낯설다’는 “낯설은 사람”과 같이 써서는 안 된다. ‘낯설다’는 어간 ‘낯설-’의 끝소리인 ‘ㄹ’이 ‘ㄴ’ 앞에서는 탈락하는 용언이기 때문이다. 관형사형 어미로 ‘-은’이 아닌 ‘-ㄴ’을 취해 “낯선 사람”처럼 표현하는 게 바르다.

마찬가지로 “거칠은 벌판” “불쑥 내밀은 손” “녹슬은 기찻길” “노랗게 물들은 은행잎” “부풀은 가슴” “시들은 꽃” “악물은 입술” “심하게 헐은 위벽”도 잘못 활용됐다. ‘거친’ ‘내민’ ‘녹슨’ ‘물든’ ‘부푼’ ‘시든’ ‘악문’ ‘헌’이라고 해야 맞다.

모두 어간의 끝소리인 ‘ㄹ’이 탈락해 줄어든 형태대로 써야 하는데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으’를 습관적으로 붙이는 것으로 보인다. 관형어로 쓰일 때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므로 유의해야 한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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