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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으로 또 편을 가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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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이치에 맞지 않는 세금을 부과했을 때 나타나는 건 사회 갈등이다. 종합부동산세가 그랬다. 편 가르기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겠다는 포퓰리즘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종부세를 ‘편 가르기 대못질’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이랬던 한나라당이 비슷한 편 가르기를 시도하고 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 구간을 추가로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은 과표 8800만원 초과에 적용되는 35%다. 2008년 세법 개정을 통해 이 구간의 세율을 내년에 2%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감세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1억200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서는 세율을 낮추지 않는 것을 검토 중이다. 내세운 명분은 “부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취약한 나라 살림을 메우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수가 연간 4800억원 정도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이 정도 세수가 큰 도움이 될까. 한번 따져보자. 2007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세를 낸 사람은 774만8670명이다. 이 중 과표 1억원 초과는 5만2542명으로 0.68%에 불과하다. 이들로부터 더 걷을 세수 4800억원은 2007년 한 해 동안 걷은 근로소득세(14조1140억원)의 3.4%에 불과하다. 내년에 걷을 총 국세(168조6000억원)의 0.3%도 안 되는 액수다. 재정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진정으로 나라 살림이 걱정된다면 돈 씀씀이를 줄이는 게 낫다. 속내는 결국 ‘부자 감세’ 논란을 잠재우고 고소득자를 윽박질러 서민들의 환심을 사자는 것 아닌가.

1588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은 무적함대를 앞세운 스페인과의 전쟁을 앞두고 군함과 대포를 마련하는 게 시급한 과제였다. 여왕은 이전부터 국민에게 많은 세금을 강요하지 않았다. 계층에 따라 세금을 더도, 덜도 걷지 않고 적절히 부과했다. 나라 살림은 전쟁을 치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왕을 돕고, 나라를 구하자며 국민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내기 시작한 것이다.(전태영, 『세금 이야기』). 이런 국민의 지원 덕에 영국은 스페인을 무찌르고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과연 우리는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 세금을 내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세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친서민 정책이 아니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