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도전 21] 무한영상벤처펀드 운영위원 차승재 우노필름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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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인터넷' 이 어느새 IMF를 밀어내며 사람들 혀에 가장 빈번하게 올려지는 단어가 됐다. 어떤 것을 끌어다 붙여도 좋다는 듯, 요술 방망이 같은 접두어 행세를 한다. 인터넷신문.인터넷방송.인터넷영화.인터넷잡지…. 뭔가에 홀리고 있는 건지, 정말 세상이 새 물결을 타는 건지 분간이 안 선다. 영화 제작사인 우노필름 대표 차승재(39)씨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가닥 안 잡히는 세상살이가 번잡해 세밑 연휴엔 현각 스님이 쓴 '만행' 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단다. 그러면서 덧붙인다는 말이 "인터넷종교 사이트를 운영하면 어떨까요?" . 또 그놈의 '인ㅌ…' 다. 헌데 농담처럼 던지는 말에 시류를 읽는 감각이 얹혀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최근 인터넷업체를 끌어들여 '일' 을 저질렀다.

차 대표는 지난달 29일 출범한 '무한영상벤처투자조합' 에서 운영위원을 맡았다. 이 투자조합은 '한글과 컴퓨터' 의 대주주인 무한기술투자를 비롯, 네티앙.이지클럽.로커스 등 인터넷 관련 업체가 참여했다. 여기에 시네마서비스.새한 같은 극장.비디오 업체가 가세해 1백10억원의 자본금을 만들었다. 車대표는 출자는 하지 않았지만 조합을 띄우는 산파 역할과 함께 앞으로 투자할 영화를 선정하는 실무를 맡았다. '무한…' 은 연간 5~7편의 한국영화에 전액 투자하고 부분투자도 할 계획이다.

"이번 투자조합의 강점은 모든 구성 인자들에게 역할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시네마서비스는 극장 배급, 새한미디어는 비디오 유통, 인터넷 업체는 온 라인에서의 마케팅을 맡는 식으로. 기존의 일부 영상 펀드처럼 자본이 주체가 되면 수익률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러다 보니 소비적이고 영화의 진보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영화에 투자가 몰렸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아는 사람들이다. 수익률이 낮더라도 영화가 좋다면 리스크를 질 생각이다" . 하지만 그러잖아도 서울극장으로 대표되는 시네마서비스가 영화배급망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프트웨어까지 장악하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해치지않을까. "당장은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강력한 모델이 출현하면 항상 경쟁체가 나오게 돼 있다. 충무로는 누구 하나가 독점하기 힘든 구조다. 지난 80년간의 한국영화사가 이를 보여준다. 제일제당이나 충무로 토착자본 등 다른 배급라인들의 등장을 눈여겨 보라. 조만간 배급시장은 균형을 잡을 것이다. 이들이 경쟁하면서 좋은 감독과 프로듀서를 잡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다양한 작품과 질 좋은 영화들이 나오리라고 본다" . 91년 영화판에 뛰어든 차 대표는 프로듀서로서 10년째다. '돈을 갖고 튀어라' 를 시작으로 '모텔선인장'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태양은 없다' '유령' 에 이르기까지 9편이 그의 손을 탔다. 내 놓는 작품마다 작품성이든 흥행이든 관심을 불러 꽤 유능한 제작자로 통한다.

"영화는 팀워크에 의한 창작이라는 점에서 다른 비즈니스보다 매혹적이다. 따라서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프로듀서는 팀워크를 엮어내는데 능해야 한다.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의 프로듀서들이 참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연조에 9편을 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일본만 해도 45세가 돼야 자기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또 외국은 전통 속에서 일하다 보니 기본이 잘 돼 있다. 실무나 영화테크놀러지에 대한 지식, 영화를 보는 안목 등이 뛰어나다. 우리는 구체제와 신체제 사이에 틈이 깊어 제대로 전수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프로듀서는 결과물을 예측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그러나 현재 젊은 프로듀서들이 열심히 하고 있어 앞날은 밝다" .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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