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2000 선거] 대만(中)-대만 '마이웨이' 공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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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만에는 대륙(중국)이 없다. "

홍콩내 대만 연구가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중국을 철저하게 없애버린 사회, 그것이 바로 대만이란 지적이다. 대만 언론들은 중국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중국 소식은 아예 외면이고, 양안회담 등 관심사만 간략하게 처리할 뿐이다. 덩달아 홍콩.마카오 문제에도 등을 돌린다. 국내 소식과 서방 및 제3세계 뉴스뿐이다.

북한 관련 소식이라면 비중있게 취급하는 우리와 딴판이다. 홍콩 중문대의 궈사오탕(郭少棠)교수는 "대만은 중국을 잊고 싶어 한다" 는 말로 이런 현상을 설명했다. 통일은 이미 물건너 갔으며, 이미 대만인들은 '마이 웨이(My Way)' 를 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중국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존재' 라는 얘기도 된다. 잊으려 할수록 중국 문제는 더욱 더 심장을 파고드는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전쟁까지 각오해야 하는 양안관계란 대만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의 변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통 후보들의 정책대결이 양안정책으로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총통선거를 맞아 지금 대만에선 양안정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현재 후보간 양안정책은 '양국론' 과 '대만독립론' 에서 '준국제관계론' 까지 다양하다.

강경론과 실리론의 차이는 있지만 총통 후보들의 양안정책이 갖는 공통점은 하나다. 대만이 결코 단시일 내의 통일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식 '한나라 두체제(一國兩制)' 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의 입장은 정반대다. 결코 오랫동안 통일을 기다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측은 "2007년이면 (무력으로) 통일이 가능하다" 는 주장을, 관변 연구단체들은 "늦어도 2020년까지는 통일된다" 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새 천년 양안관계의 고민이 있다.

대만내 양안문제 전문연구기관인 신세기판공실의 천쑹산(陳淞山)고문은 "새 천년 첫 세기에 중국 통일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 라는 입장을 보였다. 홍콩내 양안문제전문가인 링리(凌□)박사도 "대만이 발전할수록 통일은 더 멀리 도망갈 것" 이라고 전망했다.

무소속의 쑹추위(宋楚瑜)후보는 이런 점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지지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일은 잡으려고 하면 달아난다" 고 말했다. 宋후보가 일국양제 대신 '일국양부(一國兩府.한나라 두정부)' 에 가까운 '유럽연합식 연대' 를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은연중 이런 宋후보를 선호하는 기색이다. 그렇다고 宋에 대해 눈에 띄는 감정을 표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미사일과 대포를 앞세워 돌풍으로 다가왔던 1996년 선거 당시의 '북풍(北風)' 과 달리 이번 북풍은 보다 은근하게 시작됐다.

지난 6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대대공작영도소조(對臺工作領導小組.조장 江澤民)는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후보가 총통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양안간 대화재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는 입장을 정리했다.

독립을 주장하는 인물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李총통의 '적자(嫡子)' 를 자임하는 국민당 롄잔(連戰)후보의 경우 중국 당국이 '양안문제를 의논할 수 없는 인물' 로 규정한 지 오래다.

북풍이 宋에게 순풍일지, 역풍일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대륙과 가장 효과있게 대화할 수 인물' 이 대만인들의 선택기준이 된다면 宋이 가장 유리한 입장이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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