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2000] 성도 '셀프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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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이혼율의 급증과 함께 결혼 적령기를 넘긴 국내 독신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상투를 틀어야 어른' 이라는 전통적 관념이 무너지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유럽에선 이미 독신자의 증가현상이 보편화돼 프랑스의 경우 1인 독거(獨居)가구수가 전체 가구의 4분의1에 달한다.

미국에서도 결혼한 적이 없는 성인의 수가 1970년에는 19.4%였으나 90년엔 30.5%로, 독신자 수도 8%에서 23%로 각각 급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혼자 잠들고 홀로 눈뜨고 있는 셈이다. 20세기 하반기의 대중사회를 상징한 '고독한 군중' 에게는 그래도 돌아갈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마저 고독 속에 잠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 사람의 집은 성(城)이다' 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동.서양의 전통적 금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의 해체가 21세기의 가장 유력한 키워드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이에 따라 나타난 사회의 고독화 현상은 벌써 가족.성(性).사랑.커뮤니케이션 등에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성(性)은 성(城)안의 가장 은밀한, 부부의 침실 안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최근 불법으로 유통되는 온갖 CD는 물론, 어느 탤런트의 자전 수기에 이르기까지 각종 성 문화상품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당연히 고독에 대한 가장 강력한 퇴치제인 '사랑' 에 대한 숭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숭배는 부부가 아니라 자녀와 친구에 대한 숭배로 이어질 것이다. 유럽의 많은 독신자들은 '결혼한 사람들보다는 친구가 많기 때문에 고독하지는 않다' 고 대답할 정도다.

또 이처럼 점점 고독해지는 현실세계에 대한 사이버 세계의 추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가령 21세기의 최대 유망사업 중의 하나가 사이버 섹스가 될 것이라는 진단이 그렇다.

정자와 난자의 인터넷 거래에서 볼 수 있듯이 성생활과 출산조차 점차 일종의 '셀프 서비스' 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부부나 가족보다 훨씬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인터넷이 고독을 잊기 위한 가장 '환상적인 친구' 가 돼 가는 것도 '사랑' 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조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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