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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음악 전통 온전히 이어가는 ‘광대’ 스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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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호 31면

풍경 하나 오래전 얘깁니다. 아버지 손 잡고 광릉 옆 봉선사 갔다가 그만 중이 되었답니다. 운허 큰스님 손 잡고 그만 절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리 40년이 훌쩍 지났네요. 인묵스님입니다.

내가 본 인묵 스님

풍경 둘 세월이 흘러 1985년입니다. 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85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가 창립되고 이어서 민중불교운동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무실 마련하고 널리 민불련을 알리고자 뭔 일인가를 마련했습니다. 생명해방의 대축제. 7월 보름 스님들 수행 마무리하고 해제하는 날, 조상님 극락왕생 비는 날, 농사꾼 머슴들 신명 나게 노는 날. 우란분절과 백중. 그 뜻을 모두 모아 뭇 생명의 포한(抱恨)을 풀고자 판을 벌이고자 했습니다. 화계사 앞머리에서 그만 모두들 잡혀갔습니다. 우리 인묵 스님께서 그날 행사의 법주이셨습니다.

풍경 셋 광대 얘깁니다. 넓을 광(廣)자 큰 대(大)자 해서 광대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절에도 광대가 있습니다. 삼도를 누비던 광대들이 늦가을 초겨울이면 절로 깃들었답니다. 배도 고프고, 잠도 고프고, 슬픈 얘기 들어 줄 사람 고프고 해서 광대들이 절로 향했답니다. 사당패 광대들 사연, 절 사정 모두 모여 다음 해 광대들의 줄판과 사설이 시정 잡판에서 흐드러지게 펼쳐졌고요. 1990년 불교문화연구소 만들면서 광대와 스님의 삶을 묶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때 소장이 인묵 스님이었습니다.

풍경 넷 2000년 뉴밀레니엄이라 해서 난리를 쳤습니다. 그해 어딘가에서 난장을 벌였는데 누군가 기막힌 막대기춤을 추더군요. 풍장패, 소리꾼, 연극쟁이, 영화쟁이 모두 모여 새 세상 열자고 정신 없이 놀아재꼈는데, 어디선가 까까스님이 난데없이 나타나 판을 먹어버리더군요. 아마 그 춤꾼 광대가 인묵 스님이었을 겁니다.

풍경 다섯 세월이 흘러 긴 강, 큰 산이 우리 모두에게 다시 다가올 때 스님도 거기 있겠지요. 안 계시면 우리가 갈 터입니다. 그런 사연이 모여 소리가 되고 시나위가 되고 절집에서는 범음이 되고, 끝내 흘러 민백성들의 회심곡이 되고, 잡가가 되고 그런 모양입니다. 원적하신 일응 노스님은 광대였습니다. 전통소리 가사의 대가셨고, 범패 재받이 설움 다 넘어 소리와 작법(불교의식무춤)을 온건히 지키셨습니다. 그 스님의 소리 상좌가 인묵 스님입니다. 아드님이기도 하고요.

풍경 여섯 또 세월이 흘러 2009년 누군가가 큰절에 큰스님으로 계시네요.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주지 임기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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