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새 밀레니엄의 첫 햇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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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천년의 여명을 가장 먼저 머금은 기스본. 이날만큼은 더 이상 뉴질랜드만의 땅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세계인들은 가슴 조이며 Y2K(컴퓨터 2000년도 인식 오류)의 첫 뚜껑을 열면서 묵은 천년을 털어냈다.

9만명의 세계인과 밤을 꼬박 지샌 존 클라크 기스본 시장은 새 천년의 화두로 '화합' 을 꼽았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도 "우마차가 수레를 끌고 가듯 세계인들이 함께 나아가자" 며 소리쳤다.

해맞이 행사장인 기스본시의 해안 미드웨이 비치에는 예상과 달리 간간이 빗줄기가 뿌렸다.

이를 감로수처럼 고개를 치켜들어 마시는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Y2K 전문가들은 컴퓨터가 Y2K 고개를 가까스로 넘기자 환호를 올리며 '밀레니엄 축배' 를 들었다.

민.관이 힘을 합쳐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별 문제가 없었다.

뉴질랜드의 새 천년 맞이 행사는 특히 이 땅에서 사라질 뻔한 소수종족이 지구촌 가족으로 당당히 재등장해 의미를 더했다.

수도 웰링턴에서 동남쪽으로 8백60㎞ 떨어진 뉴질랜드령 채텀군도(群島)에 사는 모리오리족이 그들. 웰링턴에서 비행기로 두시간을 가야 하는 이곳은 10년 전만 해도 뉴질랜드인조차 지도상 위치만 알 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간주한 지역이다.

모리오리족이 사는 채텀군도가 1일 새벽 전세계의 시선을 모은 것은 날짜변경선에 가장 가까워 세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채텀군도의 하나인 피트섬의 하케파산이 뉴 밀레니엄의 첫 햇살과 마주했다.

이날 일출시각은 오전 4시49분(현지시간). 채텀군도 주민들은 밀레니엄 해돋이를 취재하러 온 전세계 언론사 기자를 천년에 한번쯤 올 법한 진객으로 맞았다.

새 밀레니엄의 숨소리를 놓치지 않고 전달하려는 취재진과 토착민이 뒤엉켜 새 천년을 노래했다.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합창단은 일출과 동시에 하케파산에서 '밀레니엄 조화의 장' 을 주제로 한 원주민 전통민요로 지구촌 인류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당초 폴리네시안 종족이던 이들은 뉴질랜드에서 건너온 같은 폴리네시안 종족인 마오리족과의 싸움에서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나 89년 역사학자 마이클 킹이 그들을 찾아냈다.

새 천년의 새벽을 뉴질랜드에서 지켜보며 한반도에서 소외받는 계층이 없기를, 특히 북한 동포들이 광명천지로 나와 한민족이 하나로 지낼 날을 간절히 기도했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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