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 이창호-창하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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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버리는 돌은 잡지 않고 살리려는 돌은 공격

제3보 (28~47)〓28에 젖히면 29로 막는 것은 고수들에겐 행마의 기초다. 30으로 끊었을 때 돌연 눈이 번쩍 떠지는 이변이 일어났다. 창하오가 31로 몰아 빵때림을 준 것이다.

"이사람, 참 이상하네. " 검토실의 프로들이 고개를 젓는다. 그들은 1백% '참고도' 흑1로 뻗을 것으로 봤다. 백2로 잡을 수밖에 없는데 흑도 5까지 우변을 접수한다. 크고 토실한 집. 백A의 끝내기 맛이 있다고 하나 흑집의 폭과 높이는 양쪽 백집에 비할 바 아니다.

하지만 창하오는 하변을 포기하고 귀를 압박해 갔다. 창하오는 중국의 일인자이고 특히 수읽기의 힘이 강하기로 정평이 있는 청년. 그런데 왜 여기서는 판단이 빗나가고 있을까. 전보의 흑□를 '가' 로 두지 않은 것과 지금의 31은 모두 하변을 외면하고 있다. 그는 왜 만인이 크다고 본 하변을 홀로 작다고 본 것일까. 34로 달리자 백은 제법 훌륭하게 살림을 차렸다. 흑이 35, 37로 꼬리를 잡아야하는 것도 괴로워 보인다.

"이창호 하고 두면 판단이 흐려지나 봐요. " 홍태선 7단의 말이다.

- 그럼 이 장면에선 백이 좋아졌습니까.

"아닙니다. 백이 하변에서 둥지를 틀었지만 어쨌든 귀가 파괴돼서… 백이 난관을 넘어 형세의 균형을 잡았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 (洪7단) 조그맣게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39로 크게 공격했고 그 틈에 40으로 이어 귀도 살아난다. 버리는 돌은 잡지 않고 살리려는 돌은 공격한다. 그래서 죽으려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바둑판 위의 법칙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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