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언급없는 부시 연설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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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3일 오전(한국시간)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도운 동맹국들과 동맹국 지도자 일부를 언급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한국과 노무현 대통령은 거명되지 않았다. 미국을 도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모두 우리의 젊은이들을 파병하고,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이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한국민의 입장에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은 국내의 격렬한 반발과 북핵위기로 인한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려울 때 동맹을 도와야 진짜 동맹'이라는 명분에 입각, 실로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파병인원도 미국.영국에 이어 셋째로 많다. 특히 한국이 추가 파병을 결정할 당시에는 스페인 등의 철군이 결정되는 등 미국과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부시 대통령이 100여명 단위의 파병국까지 거론하면서도 파병규모 3위의 오랜 동맹국인 한국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미국 측은 이번 연설문을 공화당 관계자가 썼기 때문에 "실수로 빠진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연설문이 수차례에 걸쳐 전문가 및 관계자들의 검토를 거치는 관례를 감안하면 석연치 않다.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부시 대통령 측은 이 대목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도 공식적인 해명을 해야 한다.

미국은 효순.미선양 사건 당시에도 사고 초기에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한국민의 자존심을 자극해, 결국 전국적인 반미감정을 유발한 바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동맹국의 자존심과 상황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은 듯한 이번 연설문 사건이 미국의 한국 홀대 및 동맹국을 배려하지 않은 자국중심적 사고의 과잉에 대한 한국민의 잠재된 반미감정을 건드릴까 걱정된다. 미국과 관계당국은 이런 사태가 반복돼 한.미동맹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