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한국의 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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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지엽(1958~ ) '한국의 가을' 전문

우리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강물 끌고 달은 가응가응 수월래에 떠오르고

단풍 든 마음 하나 둘 마당귀로 모입니다

아가, 힘들지야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

무릎 꺾인 사람들이 물 소리에 귀 밝힙니다

붉은 감 한 톨에도 천년 푸른 바람이 지납니다



서늘한 시다. 감이 익어가고 하늘이 높다. 감 한 톨에도 천년의 바람이 지나가고 '아가, 힘들지야'하는 어법 속에 어머니가 끼어들어 있어 따습다. 등을 토닥이는 그 여윈 손이 구원과 믿음을 던진다. 아가 힘들지야, 독자들은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보기 바란다. 토속어의 정감이란 바로 어머니의 젖무덤 속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 시에도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라는 토속어의 대가설(大家說)이 있다. '아가, 그 감 따다가 허리 다칠라'. 어디선가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다. 그 어머니의 목소리에 의해 으레 감나무에 까치밥 몇 개쯤은 남겨두고 따는 법. 왜냐하면 배고픈 날짐승에게 먹이를 내어주는 넉넉한 인정미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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