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조선진-왕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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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대마 사활 착각한 黑 강행군하다 철벽 허용

총보(1~156)〓잘 나갈 때는 어렵다 싶은 바둑도 쉽게 이긴다. 이 판의 조선진9단이 그렇다.

최근의 상승세 속에서 자기바둑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졌기에 그는 위기에도 느긋할 수 있었다. 이런 승부호흡이 상대에게도 전해졌는지 왕레이8단은 의외의 난조를 보였다.

자신감과 불안감은 그 결과에선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승부사는 누구나 불안과 초조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뇌를 짓누르는 긴장 속에서도 자신감을 유지하기-, 이것이야말로 승부사의 영원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승부의 하이라이트라 할 87부터 96까지를 '참고도' 에서 다시 보자. 87은 A정도로도 충분히 둘 만했다. 하지만 대마의 사활을 근본적으로 착각하고 있던 왕레이8단은 87, 89를 강행해 백에 철벽을 허용한다. 백6, 8로 대마가 동강나도 중앙의 한집과 9의 한집으로 완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趙9단은 단순히 10으로 두는 기상천외의 묘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수로 하변에선 한집이 나지 않는다(10을 당했을 때 왕레이는 얼마나 놀랐을까!).

趙9단은 일본의 본인방이 된 뒤 한결 성숙해진 자세로 판을 이끌다가 기회가 오자 단 일격으로 판을 끝냈다. 프로는 큰 타이틀을 따면 강해진다. 趙9단도 확실히 강해졌다. 156수 끝, 백 불계승.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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