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대박 부녀'… 동반 자살하려다 딸만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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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년 만에 10억원을 벌자고…못 벌면 죽자고…." 4일 자살방조 혐의로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구속된 염모(57)씨는 "딸이 10억원을 못 벌어 목숨을 끊었다"며 울먹였다.

이들 부녀가 '대박'의 꿈에 매달린 것은 지난해 5월. 모 대기업에서 일해오던 딸(30)이 "고졸 학력이라 승진이 안 된다"며 퇴직금 5000만원을 받고 직장을 그만두면서부터다.

컴퓨터에 능숙했던 딸은 인터넷으로 주식을 연구하는 한편 컴퓨터로 로또 당첨 확률을 계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평균 30만원씩 로또 복권을 샀다. 아버지는 딸의 권유로 벤처기업 위주로 주식을 사 모았다.

하지만 주가는 이들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2000여만원을 쏟아부은 로또 복권도 3등에 세번 당첨돼 500여만원을 받았을 뿐이었다. 결국 돈을 모두 날린 이들은 지난달 19일 동반 자살 유서를 썼다. 21일에는 마지막 남은 5만원으로 로또 복권을 샀다. 이날 로또당첨 발표를 지켜본 뒤 22일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소주 4병과 고량주 1병을 비운 염씨는 딸이 죽은 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가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에게 발견됐다.

1992년 지방 세무서 9급 공무원이던 염씨는 빚보증을 잘못 서 순식간에 전 재산을 날렸다. 이 때문에 부인과 이혼했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딸은 검정고시를 통해 들어간 지방 명문대마저 등록금 때문에 1년 만에 그만두고 96년부터 직장생활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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