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성지를 따라서] 충남 서산 해미읍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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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가야산이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해미읍성(충남 서산)은 '통곡의 땅' 이다.

1790~188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곳이다. 성벽을 부술 듯 거세게 불어오는 차디찬 북풍속에 불행했던 역사의 아픔이 진하게 실려온다.

정문인 진남문을 들어서면 천주교 신자들의 고문대(拷問臺)로 사용한 호야나무가 버티고 있어 '피의 역사' 를 생생히 증언해준다.

머리를 매달아 놓고 '네 죄를 알렸다' 고 다그치는 형리들의 몽둥이질이 이어졌고, 거꾸로 매달린 채 배교(背敎)를 강요당하기도했다.

천주교도들이 수감돼 질병과 배고픔으로 죽어간 두채의 감옥은 일제때 철거돼 형체도 없지만 호야나무에는 머리채를 매달았던 철사줄의 흔적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어 당시의 참혹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호야나무에서 서쪽으로 5백m 가량 걸음을 옮기면 서문이 나타난다. 서문은 '죽음의 문' 이었다. 거기에는 자리개돌이라는 잔인한 사형대가 있었다.

돌다리 위에 죄수의 팔다리를 잡아 들고 머리를 메쳐 살해하는 자리개질은 물론 여러명을 눕혀 놓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서문 밖 해미중학교를 거쳐 다리를 건너면 여숫골이 나타난다. 병인년(1866)에서 무진년(1868)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생매장을 당했다.

생매장 당하기 직전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신자들은 '예수 마리아' 를 외쳤다. 그들의 모습이 꼭 '여수(여우)에 홀려 죽은 것 같다' 는 사형집행인들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여숫골로 불렸다.

이 일대는 수십명씩 데리고 나가 큰 구덩이를 만들어 산사람을 밀어 넣고 흙으로 묻어버린 생매장터가 널려있다.

특히 '진둠벙' 은 악명이 높았던 곳. 둠벙은 웅덩이를 의미하는 충청도 사투리로 죄인둠벙으로 불리는데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수장시켰다. 지금은 고요한 연못일 뿐 당시의 처절함을 찾아볼 길이 없다.

1935년 순교자들의 유해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정강이 뼈, 치아 등이 발견됐다. 특히 발굴된 뼈들이 수직으로 서 있기도해 살아있는 사람이 묻힌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1995년 진둠벙 맞은 편에 무명 생매장 순교자묘와 함께 16m 높이의 해미 순교탑을 세웠다. 매년 수많은 교인들이 찾아와 이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밖에 성지순례 코스로는 미리내.절두산.천진암.베론성지 등이 손꼽힌다.

해미〓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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