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재계 윈윈전략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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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지난 9월 이후 석달여 만의 일이다.

비슷한 형식의 청와대 간담회가 있었지만 이날 모임은 여느 때와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종전 모임이 특히 5대 그룹에 개혁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어제 모임은 '부채비율 2백% 달성' 등 구조조정에 동참한 재계를 격려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는 또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구조조정이 일단락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런 의도에 걸맞게 이날 행사에는 현대.삼성 등 4대 그룹을 포함해 기업대표 60여명과 주요 금융기관장.경제장관 등이 참석,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하의 혹독한 구조조정에 협조해준 재계 대표 등을 격려.치하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의 정책방향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은 없었지만 이 모임은 정부의 눈치만 살피던 재계에 상당한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해주는 자리가 됐음에 틀림없다.

전경련 등도 결과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모임이 보다 큰 의미를 가지려면 격려성.일과성으로 끝날 게 아니라 정부-재계 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여 동안 정.재계 관계는 갈등으로 점철된 '대결구도'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부는 온갖 세제.금융.행정수단을 동원해 재계를 옥죄었고 재계는 이에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빅딜이 나왔고, 7개 업종 구조조정도 단행됐다.

30대 그룹 가운데 절반 정도가 주인이 바뀌거나 도산위기를 맞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재계가 겪은 시련의 혹독함을 실감할 수 있다.

일부 대기업의 과도한 빚과 무리한 투자가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정부탓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빚더미 위에서 아직도 정경유착(政經癒着)의 단맛을 못잊는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수십만명의 실업자들이 거리를 방황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정부의 개입과 간섭은 불가피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

정부의 대(對)기업 정책이 '팔 비틀기' 가 아닌 '자율과 제도' 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기업들이 정해진 룰에 따라 공정경쟁을 하는지, 또 세금을 잘 내는지만 점검하면 된다.

오너들이 전횡하지 못하도록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엄격히 처벌하면 되지 계속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런 변화에는 재계의 인식전환과 적극적인 협조가 수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벗어나곤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새로운 천년을 맞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도 이날 행사는 정.재계는 물론 한국경제가 윈 - 윈전략으로 상생(相生)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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