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피플] 역경이긴 '강펀치' 알리가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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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 흑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세기말을 맞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USA투데이.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영국 BBC방송 등이 그를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선정했다.

마이클 조던의 덩크슛도, 베이비 루스의 홈런포도 알리의 주먹을 누르지 못했다.

몇몇 언론에서 펠레를 지목했지만 알리만큼의 울림은 없다.

링을 누비던 화려한 경력과 함께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의 인간승리 드라마에 조명이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타임지는 알리를 '20세기 20대 영웅' 으로, 세계적 인명록인 인터내셔널 후스후는 '20세기를 움직인 1백인' 중 한명으로 알리를 선정했다.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는 알리가 단순한 운동선수이기를 바랐다.

적어도 알리의 권투선수 자격이 정지됐던 60년대말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마지막 성화주자로 나서면서 알리에 대한 평가는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파킨슨병 때문에 심하게 떨리던 그의 두 손은 자신의 고단했던 삶을 아름답고 의미있게 승화시킨 그에게 더욱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게 했다.

42년 미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출생한 알리는 가난 때문에 링에 올랐다.

그는 후일 권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링은 그에게 생존을 위한 장이었다.

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메달을 오하이오강에 던져버렸다.

백인 깡패의 횡포에 대한 분풀이였다.

분노는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말콤 엑스가 이끄는 이슬람 단체에 가입했다.

이름도 케시어스 클레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바꿨다.

알리는 이슬람어로 '고귀하다' 는 뜻이다.

60년 10월 헤비급 챔피언이 된 알리는 그러나 1년도 채 안돼 링을 떠나야 했다.

베트남전 때문이었다.

"원한이 없는 사람들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 며 입영을 거부했고 징역 5년과 선수자격 박탈이란 징벌이 내려졌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병역 기피자' 로 몰아붙였다.

'인권.반전 운동가' 로 활동했던 알리는 70년 복권과 함께 링으로 돌아왔다.

링은 현실보다 훨씬 평등한 장소였다.

81년 은퇴할 때까지 그는 사상 처음으로 세차례 헤비급 챔피언을 지냈다.

통산 56승(37KO)5패.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이 밝혀진 84년 이후 알리는 오히려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파킨슨병 바로 알기 운동' 을 주도했고, 93년에는 이란.이라크 전쟁 포로 교환문제를 중재했다.

아프리카 르완다 구호활동, 제3세계 부채탕감 운동에도 가담했다.

지금은 아프리카 부룬디 내전의 평화회담을 중재하고 있다.

지난 8일 알리는 뜻밖의 선물에 눈물을 흘렸다.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가 그에게 모조 금메달을 전달한 것이다.

분한 마음에 강물에 메달을 던져버린 지 39년만의 일이다.

알리는 75년 플레이보이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람들이 나를 챔피언을 지낸,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머있는 흑인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많은 사람을 도우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결국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위해 싸운 인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

알리는 지금 루이스빌의 '무하마드 알리' 가(街)에서 살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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