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법원 판결에 시비걸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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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법원이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판결을 내리자 정치권.법조계를 중심으로 한 이 법 폐지론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일부 의원은 담당 대법관들을 수구.냉전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등 반발의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의원들은 법안의 처리와 관련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다. 건강한 토론을 거쳐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도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이 법의 개폐에 관해 얼마든지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고 법원의 판결문까지 매도하는 식이어선 안 된다. 사법부의 법 해석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정치인들이 앞장서 판결문을 휴지 조각처럼 여긴다면 누가 법원의 판결에 승복하려 하겠는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하는 의원이라면 국민을 상대로 폐지의 필요성이 무엇이고, 폐지될 경우 어떤 보완책이 있는지 등을 설득해 나가야 옳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이 쏟아낸 발언들을 보면 실망을 넘어 우리의 정치 수준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어느 의원은 "대법관들은 민족 문제와 분단에 대해 한번도 고민하지 않고 한평생 기득권에 취해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비판을 넘어 인신공격 수준이다. 또 "우리 사회 곳곳에 청산되지 않은 수구세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발언에선 편 가르기식 사법부 개편 의지가 묻어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의원들을 향한 당 안팎의 공격도 문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개정을 주장해온 어느 여당 의원은 당내에서 '개혁 성향이 부족하고 비겁한 사람'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개정론자 의원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거친 표현으로 그를 비난하는 글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래서야 어떻게 건강한 토론이 가능하겠는가.

헌법재판소 결정에 이은 이번 대법원 판결 취지는 입법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 의원들은 더 이상 대법원 판결에 시비를 걸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