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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 목표 의욕보다 실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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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과도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2020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각각 21%, 27%, 30%씩 줄이는 세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다음 달 17일 국무회의에서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녹색성장위의 이 같은 목표는 주요 선진국이나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개도국들에 비해 감축량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녹색성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욕은 좋지만 우리 경제의 실상이나 기업들의 준비태세를 감안할 때 감축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잡았다는 주장이다. 자칫 국제사회 모범생이 되려다 봉이 될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녹색성장위가 제시한 세 가지 시나리오는 유엔 산하 기후협약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권고한 감축 목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IPCC는 2007년 보고서에서 한국과 중국·인도 등이 포함된 온실가스 감축 비의무국에 대해 2020년에 15~30%를 줄이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가 비교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일본은 IPCC 권고치의 최저 수준을 택했다. 일본은 당초 8%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가 최근 목표치를 25%로 올렸으나, 이는 우리나라와 달리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할 선진국 그룹의 감축 목표치 25~40%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녹색성장위가 내놓은 세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3안을 택할 경우 개도국 권고치의 최고 수준으로, 선진국 권고치의 최저치를 택한 일본보다도 온실가스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높여 잡음으로써 세계적으로 녹색성장에 앞장서고 있다는 칭송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명분이 좋다 하더라도 국익이 걸린 국제적 약속을 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 내에서도 감축 목표에 대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환경부와 녹색성장위가 3안을 지지하는 데 반해 지식경제부는 이 같은 목표가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며 1안 또는 그보다 낮은 목표치를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정부 내에서도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국내 산업의 경쟁력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하고 세계 동향을 점검해 전략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불만이 많지만 대통령의 녹색성장 명분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감축 목표가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면 경제적 손실이 커지는 것은 물론 감축 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무리한 감축 목표를 서둘러 밀어붙일 게 아니라 일정을 늦춰서라도 산업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부처 간 이견을 충분히 조율한 뒤 합리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게 옳다. 명분을 앞세워 실리를 버리는 자충수를 두기보다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키는 현명한 선택이야말로 진정한 실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