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선 '틀 만들기' 서둘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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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년 총선은 과거와 사뭇 다른 환경 속에서 치러질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등 '선거 틀' 을 짜는 작업은 부진하거나 곁가지로 새고 있다.

선거구제가 정치개혁의 전부인 양 논의가 집중되는 것도 그렇고 그 와중에 기성 정치권에 이익이 되는 사안들을 재빠르게 챙기는 모습도 우리를 실망케 한다.

내년 4.13 총선을 전후해서는 아마 역대 선거에서 경험하지 못한 풍경들이 등장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노동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한 정치자금법에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노조의 정치참여를 막던 마지막 장애물을 치워놓았다.

재계도 이에 질세라 며칠 전 정치활동 개입을 공언하고 나섰다. 시민단체.교육계 등도 총선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방향에 따라서는 지역구도 일색이던 선거판도가 크든 작든 변화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게다가 여야는 지금 신당으로의 탈바꿈 또는 '제2창당' 을 추진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국회는 진행 중인 정치관계법 협상에서 새로운 환경을 수용할 공명선거방안이나 정당의 모양새, 정치자금 배분의 새로운 틀 같은 것에도 신경써야 할 텐데 처음부터 무시하거나 기득권 지키기 아니면 협상용으로 남겨두는 '뒷맛'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선거법 협상만 하더라도 여야가 선거일 후 6개월인 현행 공소시효 기간을 3개월로 단축해 놓은 것은 일종의 '집단이기주의' 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선거 후 한달은 후보의 회계보고를 기다리고 다른 한두달은 당국이 기소여부를 판단하는 데 떼주고 나면 선관위는 언제 조사하란 말인가.

그러면서 선거운동비용은 휘발유값부터 TV연설 비용까지 잔뜩 국고로 전가해놓은 것이 지금까지 여야가 해낸 '정치개혁' 의 실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회의 대 한나라당 비율 '188:1' 로 상징되는 정치자금 문제도 여야의 형평성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도 반영해 시급히 논의해야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일종의 거래대상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3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내는 법인이 법인세의 1%를 내게 하는 방법 같은 것은 이미 상당한 공감대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이지만 아직 구체화할 기미가 없다. 선관위가 내놓은 '법인세 1%' 안도 검토할만하다.

정치개혁을 한다면서 정당민주화방안 같은 것은 논의조차 실종된 상황이다. 하다못해 구성원들이 비교적 참신하다는 여권 신당에서조차 그런 소리를 들어보기가 쉽지 않다.

이대로 가면 여야가 정기국회 종료에 임박해 선거구제 협상만 간신히 매듭지으면서 다른 중요 사안들은 '부록' 정도로 취급할 우려가 크다.

각자 당내사정이야 있겠지만 정치권은 '총선 틀' 을 정비하는 데 좀더 적극적이고 큰 시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오늘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수뇌부가 만나는 자리에서도 재촉하는 소리가 나와야 할 것이다. 총선 틀을 얼마나 잘 짜느냐, 여기에 따라 새 시대의 새 정치를 가늠하는 준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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