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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박주선씨 출두하던 날…검찰표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3일 오전 10시30분. 대검청사 중앙 현관에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이 검은색 뉴그랜저 편으로 도착했다.

그는 애써 여유를 찾으려는 듯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손가락으로 포토라인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동안 고심이 적지 않았던 듯 매우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평소의 활달한 성격과는 달리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6개월 재임시 이용하던 청사 오른편의 총장 전용 엘리베이터 대신 정면의 일반인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신광옥(辛光玉)중수부장실로 향했다.

상석을 비워놓은 채 金전총장과 辛부장은 15분 가량 대화를 나눴다.

金전총장은 "이런 모습을 보여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잔의 차와 "수고하십시오" 라는 辛부장의 말이 전직 검찰총수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다.

주임검사인 박만(朴滿)부장검사가 있는 11층 조사실로 향하는 金전총장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朴부장은 92년 12월 부산 초원복국집 발언과 관련해 김기춘(金淇春)전총장을 조사한 적이 있다.

반면 이날 오후 2시55분 대검청사에 도착한 박주선(朴柱宣)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표정은 밝았다.

왼손에 서류봉투를 들고 가볍게 웃음을 지은 그는 "옷사건과 관련해 진실을 밝히려 최선을 다했는데 축소.은폐 의혹이 생겨 안타깝다" 며 "최종보고서를 전달한데 따른 법적.도덕적 책임을 떠나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대단히 죄송스럽다" 고 말했다.

그러곤 11층 조사실로 직행, 정성복(鄭成福)검사로부터 신문을 받았다.

검찰은 이들을 서로 격리시킨 채 밤샘 조사를 진행했다.

인근 식당에서 배달한 곰탕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수사검사들은 '총장님' '비서관님' 등의 호칭 대신 '선배님' 으로 부르면서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소환된 대검청사는 물론 인근 서울지검에는 종일 무거운 기운이 흘렀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당초 1박2일로 예정됐던 김천지청 신청사 준공식 행사를 하루로 단축한 뒤 이날 저녁 늦게 침통한 표정으로 청사에 돌아가 수사상황을 보고받았다.

검사들 대부분이 말을 아꼈지만 가슴속에 토해낼 응어리가 많은 듯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검찰이 멍에를 벗고 제자리에 서는 날이 언제쯤 오겠는가" 라며 탄식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이제는 우리의 결정에 대해 승복해 주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마울 정도" 라고 안타까워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는 "먼저 이번 사건의 본체인 신동아그룹의 로비 실체를 규명하고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대검의 한 검사는 "바로 직전까지 대검에서 모신 사람으로서 말할 수 없이 침통하고 당혹스럽다.

대검의 모든 직원들이 한숨만 내리 쉬고 있다" 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金전총장과 朴전비서관의 책임 추궁에 대해선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특히 金전총장의 문서 유출에 대해 "보안이 생명인 공인으로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비판했다.

한 검사는 "전임 총장이므로 심적인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검찰 조직을 생각하면 책임지울 일은 책임지워야 한다" 며 "그래야만 검찰이 환골탈태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남정호.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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