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전력회사 재통합이 바람직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5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전력산업 구조 개편의 목적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의 지속적 보장, 소비자의 공급권 확립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수준은 다른 나라보다 높았다. 에너지 해외의존도 97%라는 열악한 전력사업 여건에서도 전기요금은 경쟁국 가운데 최저수준이었으며, 한국전력은 삼성전자와 더불어 최고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던 회사였다. 그러나 구조 개편으로 여러 개의 발전사로 분할된 이후 이 같은 목적과 효율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했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민영화 등 더 이상의 구조개편을 중단해야 함은 물론, 오히려 분할된 전력회사들을 재통합하는 역(逆)구조개편을 해야 한다. 양질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력 대란이 한 예다. 90년대 말 도매 전기료가 100배까지 치솟는 등 엄청난 부작용과 혼란이 수반됐다. 이승훈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수급균형을 이루자고 주장한다. 심지어 신재생 에너지 발전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기료를 10배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경제성 있는 양질의 전력 확보가 국가경쟁력 제고의 필수 요소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또 해외 전력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중국과 인도, 동남아 신흥 개발국은 발전소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 한 해 동안 건설하는 신규 발전설비 용량이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와 비슷한 규모다. 이런 시장에 진출하려면 중규모 발전사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유통 판매회사로 전락한 한국전력과 이전투구식 경쟁 체제인 중규모 발전사의 각개전투 대형으로는 해외 선진 거대 경쟁사들을 이길 수 없는 건 자명하지 않은가. 게다가 한정된 발전 연료원에 다수의 수요자가 몰리면 가격은 상승하고 구매자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음은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다.

글로벌 환경규제가 강화될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재통합은 필요하다. 화력발전사는 다량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 저이산화탄소 녹색 성장을 하려면 기술개발 연구와 전원개발 기획 단계에서부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통합된 전력회사가 필수적이다. 향후 스마트 그리드의 국제 시장 선점을 위해서도 그렇다.

더불어 원자력발전과 몇 개의 화력발전과 같은 ‘어울리지 않는 경쟁체제’는 태생적으로 단기 실적과 과시성 경영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규모의 경제성과 통합의 시너지효과가 있는 산업 간 통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세계적인 추세다. 주공과 토공의 통합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헌법은 농수산물까지도 유통구조를 개선해 가격안정을 도모하도록 국가에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최상의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분할해 유통 단계를 늘리고 규모의 경제를 훼손시키는 지금의 구조가 지속된다면 국가경제에 큰 해를 끼칠 게 자명하다.

신양호 한국전력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