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에 푹 빠진 금발의 김삿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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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영국인 올리버 로(29·사진)는 자신을 ‘금발의 김삿갓’이라 부른다. 영국 요크셔에서 나고 자란 로는 중국 상하이에서 사진작가이자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방랑시인 김삿갓의 삶에 매료돼 자신도 한국을 발걸음 가는 대로 누벼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난해 4월 부산에서 출발해 3주 동안 대구·대전·수원을 거쳐 서울까지 걸었다.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시작한 그는 지도에 의지해 걷기를 계속했다. 숙소도 따로 정하지 않고, 노숙을 하거나 절에서 묵었다. 몸은 고되었지만 즐거움은 배가됐다고 했다.

무엇보다 값진 경험은 걷는 동안 한국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을 카메라 렌즈에 담은 것이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어물전 아줌마의 수줍은 웃음도 담고, 경주 왕릉 앞에서 일렬로 앉아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는 여고생들의 모습도 찍었다. “여행책자에 나와 있는 관광지보다는 진짜 한국인의 삶과 인심을 보고 싶었어요. 걸어가는 저를 불러서 삼겹살과 소주를 대접해 주던 아저씨들이나 선뜻 방을 내어 주시고 맛있는 아침까지 지어준 스님까지, 김삿갓 스타일 여행 덕에 많은 다양한 이를 만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모아 ‘걸어서 본 한국(Korea on Foot)’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로 꾸몄다. 전시회는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저동 갤러리M에서 계속된다. 갤러리M의 박정아 큐레이터는 “우리에게 낯익은 한국의 이미지를 낯선 시각으로 독특하게 재구성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태국 방콕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책을 한 권 집어들었는데 김삿갓의 삶에 대한 내용이었다”며 “방랑시인의 자유롭고 낭만적인 인생에 이끌렸다”고 밝혔다.

금발의 김삿갓은 앞으로 몽골과 티베트도 걸어서 여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 전에 중국 옌볜을 먼저 가볼 생각이다. 걸어서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서, 옌볜 조선족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하고 싶어졌다는 설명이다.

“3주간 여행하면서 한국의 가장 큰 매력은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라고 느꼈어요. 김삿갓으로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을 앞으로도 소중히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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