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로커의 '긴머리' 아직도 금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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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 마련된 '열린 음악회' 녹화장. 인기 로커 김경호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로큰롤' '샤우트' 등을 열창했다. 수능시험을 막 끝내고 녹화장을 찾은 학생들은 자리를 박차고 몸을 흔들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그러나 한창 흥이 오를 무렵, 갑자기 연주가 중단되며 가수가 사라졌다. 7분 넘는 썰렁한 침묵 끝에 다시 나타난 김경호는 머리를 말총모양으로 묶은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발라드 한 곡을 부르고 무대를 내려갔다.

"가수가 지쳐서 잠시 휴식했다" 는 안내방송을 청중들은 믿지 않았다. "긴 머리는 안된다는 거겠지. " 그 추측은 적중했다. 이날 녹화분이 방송된 28일 브라운관에는 맥없는 발라드 연주 부분만 5분쯤 나왔을 뿐이었다.

남자가수의 장발을 문제삼아 두건을 쓰게하거나 머리를 묶고 출연시키는 코미디는 지구상에 한국 방송밖에 없을 것이다.

가수, 특히 로커들의 장발은 60년대부터 보편화된 상징으로 전세계 공통이다. 긴 머리는 물론 염색.화장 등을 자유롭게 하는 이웃 나라 가수들과 겨뤄야하는 국내 가수들 입장에서 군사독재 시절을 연상케하는 머리 규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청소년이 모방할 우려 때문이라지만 꽁지머리 김병지 같은 장발염색 운동 선수나 외국 연예인의 긴 머리는 여과없이 방송하면서 가수만 규제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김경호가 출연한 '열린 음악회' 에는 머리를 목 아래까지 늘어뜨린 클래식 성악인이 아무런 제재 없이 노래를 불러 대조를 이뤘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지나친 퇴폐적 분장을 막는 건 방송사의 당연한 자세다.

그러나 일반 젊은이들도 자연스럽게 하고 다니는 장발을 유독 가수에게만 금지하는 처사는 대중음악에 대한 비뚤어진 권위 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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