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이스틴 전 대사가 본 격동의 한국현대사] 출간기념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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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회고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 독자들에게는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대통령 개인의 무모한 결정에 따라 거의 실행될 뻔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또 대통령의 참모와 각료들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던 이같은 결정을 어떻게 번복시켰는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한국 독자들에겐 신군부 집권과정에서 그들이 권력장악에만 집착, 북한의 군사위협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다.

당시(일부 한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미 정부가 신군부측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엔 엄연한 한계가 있었다는 현실도 강조하려 했다. "

- 한.미관계는 당시에 비해 얼마나 변했다고 보는가.

"당시 한국은 안보와 인권이란 두가지 이유 때문에 미국의 관심대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권문제는 관심권에서 점차 벗어났고, 미 관리들이 한국문제를 이중잣대로 재는 버릇도 많이 고쳐졌다. 한.미관계는 그동안 좀 더 균등한 관계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미 관리들은 한국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데는 여전히 익숙지 않다. "

- 79년 6월말 한.미 정상회담 직전 카터 대통령은 북한의 김일성이 함께 참여하는 3국 정상회담안을 고려했다. 카터는 무슨 생각에서 그랬을까.

"카터는 박정희 대통령의 인권탄압에 불만을 갖고 그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또 과거 북한에 대한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는 일부 참모들의 건의도 작용한 것 같다. 나는 3국 정상회담은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朴정권을 자극하는 구상이며 한국내 인권개선에도 도움이 안된다며 반대했다.3국 정상회담을 고집한다면 대사직을 사임하겠다는 얘기까지 했다. "

- 현재 상황이라면 3국 정상회담안이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현 상황은 20년 전과는 상당히 다르다. 한국정부가 이를 제의한다면 미 대통령은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득실을 따져본 뒤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다. "

- 미 정부가 한국 군사정부를 상대로 소위 '북한 카드' 활용을 고려한 적이 있는데.

"내 재임 중 두차례 있었다. 카터 행정부는 광주 민주항쟁 이후 급격히 부상했던 전두환 세력에 미국측의 불만을 표하기 위해, 그리고 김대중씨 구명을 위해 북한 카드를 심각히 고려했다.의회내 일부 반한 성향의 정치인들이 카터를 부추겼다. 그러나 대북정책에 관해선 한국내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일치되는 입장이어서 미 정부로서도 북한 카드를 활용하기가 매우 부담스러웠다. "

- 회고록에 들어 있지 않은 또다른 얘기는 없나.

"朴대통령 시해 이후 최규하 서리체제에서 미 정부는 향후 한국정부가 취할 민주화 조치들을 열거한 미국판 로드 맵을 한국에 제시하려 했다. 홀브룩 국무차관보나 백악관 관리들이 이를 지지했지만 나는 비현실적이고 한국실정을 모르는 위험한 생각이라며 극구 반대했다. "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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